어사 박문수는 왜 미치광이로 불렸나요?
조선 조정의 공공의 적이 되기도하고,모두를 적으로 돌릴지라도 백성을 위해 맞는말만 했던 암행어사 박문수는 왜 미치광이로 불렸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 앞에서도 당당한 박문수의 행동이 사뭇 미치광이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그 한 대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728년 3월 국정을 논하던 자리에 많은 신하들 사이엔 영남지역에서 돌아온 박문수도 있었습니다.
이당시 영남지역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고 그 형편을 살피고 감찰하고 돌아왔습니다.
왕에게 직접 조목조목 백성의 형평과 수령들의 잘잘못을 말하던 그때 신하들이 박문수를 보고 경악을 금치못했다고 합니다.
박문수가 왕앞에서 엄청난 돌발행동을 했는데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왕에게 보여줬는데 이 물건은 전복이였습니다.
전복을 보여준 이유는 영남지역 양산군수의 잘못을 폭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양산군수는 백성들이 힘겹게 잡은 전복을 제값을 쳐주지 않고 후려쳐서 산 후 비사게 팔아 이득을 남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값을 받지 못해 힘들었을 백성들, 박문수에게 양산군수의 횡포를 털어놓은 것입니다.
어사를 하면서 백성을 돕는 일을 많이 했는데 백성들 사이에선 정의의 사도로 알려졌습니다.
지방 민심을 두루 살핀 어사 박문수, 그는 백성들의 고충을 왕과 조정대신들에게 알리곤 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문수는 실제 암행어사로서 활약이 그다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사 행적과 관련된 수많은 설화들이
전해져 내려오는 이유는
할말을 하는 강직한 성품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728년 3월 국정을 논하던 자리에 많은 신하들 사이엔 영남지역에서 돌아온 박문수는 이당시 영남지역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고 그 형편을 살피고 감찰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왕에게 직접 조목조목 백성의 형평과 수령들의 잘잘못을 말하던 그때 신하들이 박문수를 보고 경악을 금치못하는데 박문수가 왕앞에서 엄청난 돌발행동을 했는데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왕에게 보여줬는데 이 물건은 전복이였다고 합니다. 전복을 보여준 이유는 영남지역 양산군수의 잘못을 폭로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양산군수는 백성들이 힘겹게 잡은 전복을 제값을 쳐주지 않고 후려쳐서 산 후 비사게 팔아 이득을 남기고 있었고 제값을 받지 못해 힘들었을 백성들, 박문수에게 양산군수의 횡포를 털어놨다고 합니다. 바로 박문수는 전복을 궁으로가져와서 양산군수가 백성을 괴롭힌 증거다 라며 왕에게 알려준다고 합니다. 이렇게 백성들의 편에서는 어떠한 행동도 마다 하지 않는 그였기에 미치광이로 불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문수와 같은 경우 왕에게 까지 거침없는 언행과 더불어서
직언, 과격한말 등을 하는 등 이에 따라서 미치광이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