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는 과거를 9번이나 본 이유는 무엇인가요?
울곡 이이의 천재성을 이야기할 때 9번의 장원급제를 말하죠.
그런데 조선시대에 관리로 등용이 되려면 5번의 시험으로도 충분함에도 9번의 장원을 했다는 것은 굳이 안쳐도 될 시험까지 본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조선의 과거제도는 문과, 무과, 잡과의 세 종류가 있었습니다.
이중에서 문관 등용 시험인 문과는 크게 대과(大科)와 소과(小科)로 나뉘어지며,
소과에는 생원과(生員科)와 진사과(進士科)가 있었고 이를 생진과(生進科)라고 통칭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험에는 초시(初試)와 복시(覆試)가 있었고 여기에 합격한 자를 초시 그리고 생원, 진사라 불렀습니다.
대과에는 소과에 급제한 진사와 생원, 하급 관리, 성균관 유생들이 응시하였으며, 초시(初試)와 복시(覆試)를 실시하여 급제자를 선발한 후에 전시(殿試- 임금님이 친견하는 시험)에서 그 등급을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율곡은
생원진사과 초시→생원진사과 복시→대과초시→대과복시→대과전시 총 7번 시험에 합격하였고, 별도로 별시(특별시) 초시 복시에도 합격하여 당시에 '구장 장원(九場壯元), 구도 장원(九度壯元)'이라 일컬어진 것입니다.
율곡 이이는 과거 시험에서 9번이나 장원 급제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립니다. 그가 이렇게 많이 시험을 치룬 이유는 조선의 과거 제도 때문에 그렇습니다. 조선의 과거 제도는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습니다. 소과와 대과로 나뉘고, 그리고 다시 초시, 복시, 그리고 전시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기 시험인 식년시 이외에도 별시와 같은 특별시험에 도전했으며, 학문적 열정 때문에 시험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한 것입니다.
그는 13세때 진사과 초시, 진사과 복시, 별시 초시, 29세때는 다시 진사과 초시에 장원했습니다. 그리고 생원고 초시와 복시, 대과 초시, 복시, 전시에 장원으로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