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학문

역사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현종 시대 예송 문제가 있었는데, 기해예송과 갑인예송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현종 시대 예송 문제가 있었는데, 기해예송과 갑인예송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집권층에게 소중한 의례의식으로 보이나, 한편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허례의식에 조선의 중요한 시절을 허송세월 보낸 것에 안타깝습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붉은메추리240
      붉은메추리240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송논쟁은 정치적, 철학적, 윤리적 상징성이 엄청났던 사건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단순한 복식 정도였지만, 배경적으로는 서인과 남인(더 정확하게는 동인) 시절부터 있었던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의 문제, 더 나아가서는 조선 초기부터 존재하였던 조선의 통치 체제 문제까지 걸려 있던 일대 격전이었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효종의 정통성과 맞물려 대폭발로 이어진 것이 바로 예송논쟁이다. 실제 송시열이 체이부정 이야기를 꺼낸 순간 정태화가 기겁하고 막아서며 경안군 이석견을 이유로 송시열을 막았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예송은 시작부터 왕의 정통성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였다. 다만 정통성 논쟁은 말을 꺼낸 순간부터 역모로 처벌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나마 곁다리로 낀 상복으로 논쟁을 벌인 것이다. 그리고 논쟁 당사자들도 상복은 그저 꼼수라는 것을 시작부터 알고 있어서, 정태화가 이석견(소현세자의 막내아들)을 이야기하거나, 윤선도가 상소에서 왕의 적통과 종통을 이야기한 것이다.


      1차 기해예송

      1659년 5월 효종이 승하한 후 인조의 계비인 장렬왕후가 효종을 위해 입어야 할 상복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에 관해 모두가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었다. 효종이 적자이긴 했지만 형 소현세자에 대해 이미 어머니가 큰아들에 대한 장례를 마쳤었다. 왕위를 계승받은 국왕이었으므로, 종법상 모후인 장렬왕후가 효종을 위해 1년짜리 상복인 기년복(朞年服)을 입어야 하는가 3년짜리 참최복(斬衰服)을 입어야 하는가가 문제된 것이다. 이에 관해 조정 신료들이 물밑에서 조심스럽게 논의를 시작하였다.


      2차 갑인예송

      현종 15년(1674) 효종의 부인이자 현종의 어머니인 인선왕후가 사망했다. 이때도 장렬왕후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20] 장렬왕후가 상복을 입어야 하는 기간으로 논란이 벌어지게 되었다. 효종 때는 《경국대전》이 장자와 차자를 같게 취급해 기년복을 입어도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며느리의 경우 사정이 달라 맏며느리는 기년복인데 다른 며느리는 9개월짜리인 대공복(大功服)을 입도록 규정해 문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