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는 별자리를 관측한것이 맞나요
'첨성대'는 별을 관측하기에는 낮고 인가가 많은 곳에 있어서 별자리를 관측하기에는 불리한 여건이라고 하는데
정말 첨성대는 별자리를 관측 한곳이 맞나요?
안녕하세요! 손성민 과학전문가입니다.
'첨성대'는 실제로 별자리를 관측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장소입니다. 첨성대는 주로 천문학적인 관측을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로 고대에는 천체의 운동을 관측하고 예측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별자리를 관측하기에는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첨성대는 별자리를 관측하는 데에도 일부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첨성대의 구조를 이용하여 별자리의 위치를 파악하거나 첨성대에서 관측한 별자리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는 등의 방식으로 별자리를 관측하는 데에도 활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첨성대'는 별자리를 관측하기에는 적합한 장소가 아니지만 일부 방식으로는 별자리를 관측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던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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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철승 과학전문가입니다.
첨성대는 신라 시대에 지어진
대한민국 경주시에
위치한 석조 건축물로 동양 최고의
천문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첨성대의 정확한 용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일반적으로 첨성대가 천문관측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 구조가 일정한 패턴으로 배열된
계단과 홈이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추적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첨성대의 계단은 27단으로 이는
달이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
즉 한 달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여 절기를
결정하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가설도 존재합니다.
첨성대 주변은 현재 도심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대에도 인가가 많은 곳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천문대처럼 정밀한
별자리 관측을
하기에는 실제로
이상적인 환경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역사적 기록이 명확하게 남아 있지 않아
첨성대가 천문학적 목적으로만 사용되었는지
다른 의례적 또는 상징적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가
있습니다.
첨성대가 현대의 천문대와 같은 방식으로
별자리를 관측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견해는 다소 의문이 남지만 태양 달
별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이를 국가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반영하는 데 사용되었을
수는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할 때
첨성대가 지어진 당시의 배경과
기술적 수준을 고려하면 천문 관측에
어느 정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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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상현 과학전문가입니다.
첨성대는 절기와 같은 시기의 정확한 계산을 위해 측정을 목적으로 된 천문대라고 합니다. 또한 자오선과 동서남북 네방위의 표준으로도 사용되었을 것이라고도 합니다.안녕하세요. 송종민 과학전문가입니다.
역사적으로 첨성대(瞻星臺)는 그 이름대로 '별[星]을 보는[瞻]'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져 내려왔고 조선 후기까지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으나, 광복 이후 새로운 견해가 등장하였다. 우선 삼국사기에는 첨성대의 기록이 등장하지 않으며, 삼국유사에는 명칭과 용도, 사람이 오르내렸다는 기록이 있으나 실제로 그렇다고 하기엔 내부가 매우 좁고 불편하다. 게다가 천문 관측을 하는 시설인데 정작 다른 천문대처럼 산 위나 높은 곳이 아니라 왕궁 옆의 평지에 건설되었다는 점도 의문으로 제기되었다.[6]
그래서 첨성대의 역할이 천문대가 아니라 일종의 기념비 혹은 제단, 창고였을 것이라는 설이 등장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종교적 상징물(이용범 교수)', '과학 수준을 과시하는 상징물(김용운 교수)', '선덕여왕을 신성화하기 위한 도구(정연식 교수)'[7] 등으로 사용되었다는 설이 제기되었으며, 또는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이 자리에 과거 천문대가 있기는 했지만 목조 건물이었으므로 지금은 사라졌고 폐사지의 석탑, 포석정지의 석구(石溝)처럼 천문대의 '부속 건물'만 남은 것이 지금의 첨성대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들 역시 추측에 불과할 뿐 문헌적・고고학적 증거가 없어 확신이 불가능하며, 주류 학계에서는 정사에 기록된 통설과 신라 천문 기록의 정황 연구 등을 토대로 첨성대가 천문대였음을 정론으로 받아들인다.
안녕하세요. 홍성택 과학전문가입니다.
첨성대는 일정한 방향으로 정확하게 지정된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주로 태양의 위치와 시간을 파악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별자리 관측은 첨성대와는 다른 천문학적인 활동으로, 별들의 위치와 모양을 관찰하여 별자리를 형성하고 이를 기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재훈 과학전문가입니다.
첨성대가 천문대가 아닌 종교건축물이나 기타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을거라는 주장이 제기된적도 있었지만 근거부족과 여러 기록의 정황상 첨성대는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였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안녕하세요. 설효훈 과학전문가입니다.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9m이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탈 - 경주 첨성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