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애초에 둘이 비슷했으면 굳이 구분하지 않았겠죠?
한참 후대에 법가가 멸망 한 뒤에는
법가의 사상 중 일부가 유가에 혼합되기도 했지만
그건 법가가 이미 망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고
법가, 유가 둘다 있던 시절에는
서로 라이벌 수준을 넘어서
아예 서로 다른 나라를 영역으로 삼고 전쟁을 벌였던 사이 입니다
즉, 당시 유가에게 법가 사상을 받아 들이란 말은
한국인에게 독도를 일본에게 넘기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던 거죠
거기다 진시황이 도형량, 문자 등등 많은 분야의 통일을
자기가 정한거 말고는 전부 지우는 방식으로 시도한 만큼
유가가 저항 하지 않았더라도 결국 법가가 아니라서 지워졌을 확률이 높습니다
유가가 그나마 영향력이 강했으니까 진시황상대로 반항이라도 할 수 있었던 거지
유가 하나 때문에 분서갱유가 일어난건 아니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