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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어사들이 갖고 있던 마패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어렸을적 많이 접했던 어사 박문수의 이야기를 기억하실겁니다.탐관오리들을 처벌하기위해 몰래 잠입하여 수사를 한뒤 마패를 꺼내며 암행서사요출두요를 외치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날 만큼 멋졌던거 같습니다.

이때 암행서사들이 자신의 신분을 밝힐때 마패를 꺼내는데 마패가 신분의 증명수단 이외에 다른 용도로도 사용이 가능했다고 들었는데요

어사들의 신분확인외에 마패의 사용용도로는 어떤것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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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암행어사란 임금을 대신하여 맡은지역을 순찰, 보고또는 일을 처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영조때 암행어사제도를 장려했습니다

      마패는 역마와 역졸을 이용할 수 있는 단순한 증명서인데, 임금이 내린 암행어사의 신분 및 임무표시인 봉서를 대신해서 사용되었습니다.

      마패는 1마패에서부터 5마패까지 5종이 있었는데, 암행어사에게는 주로 2마패가 지급되었습니다.

      암행어사가 가지고 있다면 신분과 임무표시를 알리는 물건이된답니다.

      마패를 가지고있다는건 권력의 상징성을 가지고있다는겁니다.

      암행어사의 상징 마패는역마와 역졸을 이용할 수 있는 증명이며, 유척은 검시를 할 때 쓰는 놋쇠의 자입니다. 이들이 행차할 때는 선문(지방에 출장할 때 관리의 도착날을 그 지방에 미리 통지한 공문)을 사용하지 않고 미복으로 암행하여 수령의 행적과 백성의 억울한 사정 등 민정을 자세히 살펴, 필요할 경우에는 출도하여 그 신분을 밝힙니다. 비위 등 수령의 잘못이 밝혀지면그 죄질에 따라 관인을 빼앗고 봉고파직하여 직무 집행을 정지시키고, 임시로 형옥을 심리하여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었습니다.

      역에서 말을 빌릴수있는 것입니다.역이란, 말을 빌릴수있는 곳. 원은 숙박기능을 하는곳입니다

      암행어사는 궁궐에있는 임금을 대신하여 지역을 돌아다녔기때문에, 암행어사의 임무는 막중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패는 말의 얼굴과 꼬리가 달린 나무나 동그라미 모양의 판자로, 어사가 조사나 수사를 할 때 조사 대상의 문 앞에 꽂아 놓았습니다. 이것은 해당 가문이나 인물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임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 고려시대 역참제(驛站制)와 파발제(擺撥制)에 의한 통신의 중요한 수단으로 말을 사용하게 되면서 그 규제를 위하여 마패제(馬牌制)가 실시되었습니다. 이 제도는 그대로 조선시대에 계승되어 1435년(세종 17)에는 새로 마패를 만들어 왕족 ·관찰사 ·절제사 ·수군처치사(水軍處置使) ·개성유수 등에게 발급하고 구패는 회수하였습니다. 이 신패는 조선 후기까지 똑같은 형태로 유지되고 주조(鑄造)만 거듭되었습니다.

      지름이 10cm 정도 되는 구리쇠로 만든 둥근 패에 연호 ·연월일과 ‘상서원인(尙書院印)’이라 새기고, 한쪽 면에는 말을 새겼는데, 말의 수가 1마리부터 10마리까지 여러 종류가 있어 급마규정(給馬規定)에 따라 지급하였습니다. 또한 암행어사에게 지급된 마패는 어사가 인장 대용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신분과 권력을 상징한다고 봅니다.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패는 역마의 지급을 규정하는 패로, 조선시대 공무로 출장가는 관원은 주로 역마를 이용했는데 이때 상서원으로부터 발급하는 마패를 증표로 삼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마패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어사나 관리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마패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법원에서 증거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패는 이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을의 경비나 경찰 등 공공 안전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병사"들이 마패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신분을 증명하고, 범죄자를 검거하는 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마패는 또한 부녀자들이 나갈 때,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용도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마패는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성인식이나 결혼식, 장례식 등 다양한 행사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성인식이나 결혼식에서는 새로운 성인이나 부부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마패를 사용하였고, 장례식에서는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마패를 사용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지방으로 공무를 가는 어사들이 가지고 있었던 마패는 주로

      신분을 알리는 용도와 말 모양이 몇개 있느냐에 따라서 한꺼번에 말을

      빌릴수 있는 용도로 사용을 하였씁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패는 조선시대 신분증입니다

      조선시대 역마를 이용할수 있는 증명.마패라고도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패는 사실 조선시대의 이동수단인 '말을 사용(이용)할 수 있는 증표입니다.

      나라에서는 전국의 주요 지역에 말을 빌릴 수 있는 역(驛)을 설치하였는데, 이는 말이라는 것이 생물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100%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었고, 그때그때 말을 바꿔줘야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패는 관리들이 공무(公務)로 지방에 갈 때 나라의 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증표로 쓰던 패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마패는 신분확인 외에 말을 빌릴 수 있는 수가 그려져 있습니다. 말이 5개 있으면 5마리 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