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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하늘소177
힘찬하늘소177

여말선초 시기의 인물인 야은 길재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여말 선초 시기의 인물인 야은 길재가 길러낸 후학들은 훗날 조선의 사림파를 이룬다고 합니딘.


그렇기에 길재는 사림파의 조상 중 1명이 된다고도 하는데요.


야은 길재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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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1세때 절에 들어가 글을 배우고 그 뒤 포은 정몽주의 문하에서 수학, 18세때인 1370년 박분에게 논어, 맹자를 배웠으며 그 뒤 박분과 함께 개경으로 가 이색, 정몽주, 권근의 제자가 되어 성리학을 공부했습니다.

      1374년 국자감에 들어가 생원시에 합격, 그 해에 감시에 합격했습니다.

      1386년 문과에 급제, 1387년 성균관 확정이 되고 , 1388년 성균관 박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389년 문하주서가 되었으나 나라가 망할 것임을 알고 여러 차례 관직을 사양하였으나 왕은 그를 아껴 사직서를 반려, 창왕 때에는 문하주서가 되었으나 고려가 쇠망할 기운을 보이자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관직을 사퇴, 조선이 건국된 후인 1400년 전부터 친하게 지낸 세자 이방원이 그에게 태상박아의 벼슬을 내렸으나 두 왕조를 섬길수 없다하여 거절, 고향인 경상북도 선산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세종이 즉위하던 해인 1419년 67세를 일기로 사망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본관 해평(海平). 자 재보(再父). 호 야은(冶隱) ·금오산인(金烏山人). 시호 충절(忠節). 금주지사 (錦州知事) 원진(元璡)의 아들. 구미 출생. 1363년 냉산(冷山) 도리사(桃李寺)에서 처음 글을 배웠으며, 1370년 박분(朴賁)에게 《논어》 《맹자》를 배우면서 성리학을 접하였다. 관료로 있던 아버지를 만나러 개경에 갔다가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권근(權近) 등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1374년 생원시(生員試)에, 1383년(우왕 9) 사마감시(司馬監試)에 합격하고, 그해 중랑장 신면(申勉)의 딸과 결혼하였다.

      1386년 진사시에 합격, 청주목(淸州牧) 사록(司錄)에 임명되나 부임하지 않았고, 다음해 성균학정(成均學正)이 되었다가, 1388년에 순유박사(諄諭博士)를 거쳐 성균박사(成均博士)로 승진하였다. 1389년(창왕 1)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고려의 쇠망을 짐작하여 늙은 어머니에 대한 봉양을 구실로 사직하였으며, 고향으로 가는 길에 장단에 있던 이색(李穡)을 만나기도 하였다. 1390년 계림부(鷄林府)의 교수가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우왕의 죽음을 듣고 마음으로 3년상을 행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뒤 1400년(정종 2)에 이방원(李芳遠)이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임명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을 말하며 거절하였다. 1402년(태종 2)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불교식 장례법을 따르지 않고 성리학적 가례(家禮)를 따랐다. 세종이 즉위한 뒤 길재의 절의를 기리는 뜻에 그 자손을 서용하려 하자, 자신이 고려에 충성한 것처럼 자손들은 조선에 충성해야 할 것이라며 자손들의 관직 진출을 인정해주었다.

      어머니에 대한 효도가 지극하며 세상의 영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을 연구하였기 때문에 그를 본받고 가르침을 얻으려는 학자가 줄을 이었으며, 김숙자(金叔滋)를 비롯하여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등이 학맥을 이었다. 청풍서원(淸風書院)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야은집》 《야은속집(冶隱續集)》, 언행록인 《야은언행습유록(冶隱言行拾遺錄)》이 있다.

      출처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