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조선시대 조운제도와 고려시대 조운제도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영토는 조선이 더 크지만 조운제도는 고려시대에도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조운제도와 고려시대의 조운제도는 운송방식이나 운송수단 등을
고려했을 때 어떤 차이점이 있고
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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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이란 조창을 설치하여 거둬 들인 세곡을 고나리하고 수운을 이용하여 경창으로 선박을 운송하는 제도입니다. 고려는 13개의 조창이 설치되었습니다. 조선은 전기에는 9개 조창, 후기에는 8개 조창으로 줄어듭니다. 그 이유는 고려 시대는 주로 세곡을 운반했으나 조선 시대는 세곡 이외에 삼베, 무명 등으로 간소화되고,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로 화폐 유통이 늘면서 조운의 역할이 축소되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서해안에 석두창(石頭倉) · 통양창(通陽倉) · 하양창(河陽倉) · 영풍창(永豐倉) · 진성창(鎭城倉) · 부용창(芙蓉倉) · 장흥창(長興倉) · 해룡창(海龍倉) · 해릉창(海陵倉) · 안흥창(安興倉), 그리고 덕흥창(충주 德興倉), 흥원창(원주 興元倉), 안란창(장연 安瀾倉)이 있었습니다.
조선서대 후기 <만기요람>에 조창은 충주 가흥창, 아산 공진창, 옥구 군산창, 함열 성당창, 영광 법성포창, 창원 마산창, 진주 가산창, 밀양 삼랑창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