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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매미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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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은 삼촌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는데

단종은 수양대군이라는 삼촌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는데 왜 그랬는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왕위를 넘겨주고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삼문⋅박팽년⋅하위지 등은 계유정난 이후 세조의 집현전 관원 융화책에 따라 공신에 책록되고, 승지와 육조의 참판 등에까지 오르는 우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계유정난은 방관하였으나 단종의 양위와 세조의 즉위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 등 집현전 출신 관인과 군권을 관장한 성승⋅유응부⋅김문기 및 단종의 외숙인 권자신 등은 단종의 양위 직후부터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할 것을 모의하였습니다.

      이들은 1456년 6월 상왕⋅왕⋅세자가 창덕궁에 임석하여 세조의 고명을 가지고 온 명사 윤봉 등을 위한 환영연 자리에서 왕과 세자를 죽이고 단종을 복위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거사 당일 직접 세조를 참살하기로 된 별운검이 폐지되고 세자가 불참하자 거사를 후일로 연기하였습니다. 하지만 같이 모의하였던 김질이 거사 성공에 회의를 품고 이를 장인인 정창손에게 고하였습니다. 정창손이 즉시 세조에게 고하여 성삼문 등은 죽임을 당하였고, 거사는 좌절되고 말았다. 이를 ‘사육신 사건’이라 하는데, 그 후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었다가 폐서인 되어 영월에 유배되었습니다.

      1457년에 다시 금성대군 등이 단종 복위 기도를 시도하였습니다. 금성대군은 세종의 6남으로 수양대군과 대립하면서 단종의 왕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계유정난 직후 수양대군의 배척을 받아 경기도 삭녕에 유배되었고, 성삼문 등의 단종 복위 사건으로 경상도 순흥에 이배되었습니다. 금성대군은 이곳에서 영남 유생들과 단종 복위를 모의하였습니다. 그곳의 고을 군사와 향리를 모으고 도내의 사족들에게 격문을 돌려 의병을 일으켜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을 복위시키고자 하였으나, 순흥 관노의 고발로 사건 전모가 드러났습니다. 결국 금성대군 등은 사사되었고, 단종도 죽임을 당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