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로고
검색 이미지
생활꿀팁 이미지
생활꿀팁생활
생활꿀팁 이미지
생활꿀팁생활
밝은칠면조236
밝은칠면조23621.05.19

금강산은 정말 일만이천봉인가요?

티비를 보다가 문득 궁금한게 생겼는데요~금강산은 정말로 일만이천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건가요?어릴때 고무줄 할때 부르던 노래도 있었잖아요~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이 노래처럼 정말 금강산은 봉우리가 많나요? 아니면 그냥 추상적으로 얘기를 하는건가요?아니면 다른 유래가 있어서 그렇게 불리우는건지 알려주세요~


  • 일만 이천봉이라는 숫자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그 봉우리를 정확히 세보고 일만 이천봉이라 한 것은 아니죠.

    금강산이란 이름은 원래 불교사상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금강이란 말은 금강경의 ‘금강’이 의미하듯이 단단함, 혹은 강인함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이 금강이란 접두어는 곧 금강석의 단단함이 모든 것을 잘라내는 것과 같이 세속적인 일체의 것을 끊고 온전한 반야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연원을 좀더 자세히 고찰해보면, 불교 경전과 관련이 있지요. 바로 화엄경에 “바다 가운데 금강산이 있는데 담무갈 보살(法起菩薩)이 항상 1만 2천명의 보살, 권속과 함께 머물며 설법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하며, 그래서 또한 금강산을 흔히 1만 2천봉이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세보면 금강산은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해 해발 1천5백m이상의 거봉이 10개에 이르며 1천m이상의 준봉은 무려 60여개나 된다고 합니다.

    비로봉 북쪽에는 옥녀봉(1천4백24m), 상등봉(1천2백27m), 오봉산(1천2백64m), 선창산(1천2백26m), 금수봉(1천1백13m) 등이 우뚝우뚝 솟아있고 남쪽으로는 월출봉(1천5백80m), 일출봉(1천5백52m), 백마봉(1천5백10m) 등이 자리잡고 있고요.

    동남쪽으로는 장군산(1천5백60m)과 채하봉(1천5백88m), 서쪽으로는 영랑봉(1천6백1m), 능허봉(1천4백56m) 등이 군소 봉우리들을 거느린채 위용을 자랑합니다.


  • 안녕하세요

    금강산이 일만이천봉이라 불리는 이유는 고려시대 태조 왕건이 어느날 풍악산(금강산)에 왔는데 내금강의 한 지점인 배점에 다다랐을때 갑자기 법기보살이 일만이천 무리를 거느리고 나타났고 태조는 황급히 엎드려 적을 했는데 그 절한 자리가 배점이고 법기보살이 나타나 광채를 발하던 곳을 방관대라 하여 그 자리에 정양사를 세우고 왕건의 원찰로 삼았다고 합니다. 여지승랑 회양도호부조에 하륜이 중을 보내는 시에서 황산을 금강산이라고 일컫는 것은 장격의 설을 빌린것인데 장경에 말하기를 동해속의 팔만유순의 곳에 달무갈(성인보살)의 무리 1만 2천이 항상 그가운데 머문다 하였는데 이를 두고 후에 와전되어 금강산이 일만이천 봉우리우 숫자로 변경인식된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결국 일만이천은 보살의 제자들이 금강산에 출현한 숫자이지 봉우리 숫자는 아니라는 합니다.

    답변이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 금강산은 높고 험한 곳이 많지만 나무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높은 산꼭대기에도 소나무가 살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그래서 그곳은 보는 사람이 마음대로 이름을 붙여도 좋다고 해서 그만큼 돌로 만들어진 봉우리 많다는 뜻이 될 겁니다.

    실제로는 70개 봉우리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 우리나라 최고의 영산 (靈山)이자 名山인 금강산은 그 이름도 다양하다. 상악 (霜岳), 개골 (皆骨), 풍악 (楓岳), 봉래 (蓬萊) 등이다. 이름만큼이나 산의 모습이 다양하다는 뜻이다. 금강산 관련 초기의 기록으로는『삼국유사』이다.『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금강산의 이름은 주로 상악(霜岳), 개골 (皆骨), 풍악 (楓岳)이다.

    고려 중기 이전까지는 금강산이 보여주는 이미지, 즉 서릿발같이 흰 산이라는 의미의 상악 (霜岳), 잎이 모두 떨어지면 바위가 그대로 드러나면서 온통 뼈만 보이는 산이라는 의미의 개골 (豈骨), 단풍으로 아름다운 산이라는 의미의 풍악 (楓岳)이 쓰였다.

    고려말 조선 초에 이르러 금강산을 노래한 시들이 나타나면서는 명칭에 도교와 불교적인 색채가 반영된다. 가령 여름산을 지칭하는 봉래산(蓬萊山)은 동해 바다 한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는 섬 혹은 산이 셋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봉래산이라는 설화에서 따온 이름이다.

    지금 까지 불리는 금강산 명칭은 불교 용어에서 따왔다. ‘금강 (金剛)’이란 굳세고 단단하여 변하지 않는 굳은 佛心을 뜻한다. 사찰 입구마다 있는 ‘금강역사 (金剛力士)’ 또한 불법을 수호하려는 굳은

    佛心을 나타낸다. 또한 ‘금강경 (金剛經)’이라는 불교 경전이 있다.

    그리고 『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이라는 경전에는 금강산이라는 이름이 그대로 나온다. “바다 가운데 부처가 사시는 금강산이 있는데 담무갈 보살[法起菩薩]이 항상 1만 2천명의 보살, 권속과 함께 머물며 설법하고 있다”이다. 금강산의 1만 2천봉도 여기서 유래한다고 한다 .

    그러나 일만 이천명의 보살과 일만 이천봉의 상관관계는 선뜩 납득이 가질 않는다 . 우리 노랫말에는 금강산이 일만 이천개의 봉우리를 가졌다고 나오는데 금강산은 정말 일만 이천 봉일까? 누가 그 많은 것을 몇 날 며칠을 두고 세어 보았을까?

    그런데 금강산 봉우리를 직접 세어 보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금강산에는 1천개 정도의 봉우리가 있으며 봉우리 개념을 확대하여 최대한 수치를 늘려 잡는다 하더라도 3000~4000개 정도라고 한다 .

    그렇다면 왜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만 이천이라는 숫자를 사용했을까? <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 역시 왜 보살의 숫자를 일만 이천이라 했을까? 또한 보살과 봉우리가 무슨 관계일까? 천자자연의 이치를 밝혀놓은 『주역 (周易)』을 통해 추론 (推論)하건대, 공자가 『주역 (周易)』 계사전 (繫辭傳)에서 설명한 만물지수 (萬物之數)인 11,520을 반올림하여 나온 수자가 일만 이천이라는 數이다 .

    즉 공자는 『주역』 계사전에서 만물을 나타내는 天地之數에 대해 ‘天一地二天三地四天五地六天七地八天九地十이니 天數는 五요 地數는 五이니 凡天地之數 五十有五이니 此所以成變化하며 而行鬼神也라 (하늘 하나, 땅 둘, 하늘 셋, 땅 넷, 하늘 다섯, 땅 여섯, 하늘 일곱, 땅 여덟, 하늘 아홉, 땅 열이니, 무릇 하늘과 땅의 수가 오십오니, 이것으로써 변화를 이루며 귀신을 행하느니라)’고 하였다.

    천지의 수인 1에서 10의 수를 토대로 만물의 수 (萬物之數)를 나타내었다는 뜻이다. 즉 천지자연 속에서 나온 만물의 수를 대략 一萬 一千五百二十 (11,520) 으로 계산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萬物之數’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공자는 『주역』 계사상전 9장에서 이 계산법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

    만물의 수 (萬物之數)이기에 ‘무슨 수 (數)가 나왔느냐?’는 말을 비롯해 ‘거기 갈 수 (數) 있나’ ‘여기 올 수 (數) 있나’ ‘먹을 수 (數) 있나’ ‘입을 수(數) 있나’ ‘할 수 (數) 있나’ ‘될 수 (數) 있나’ ‘그럴 수 (數)가 있나’ ‘ 무슨 수(數)를 내야겠는데’ ‘뾰족한 수 (數)가 없다’ ‘분수 (分數)를 알아야지’

    ‘미지수(未知數)’ ‘신수 (身數)’ ‘운수 (運數)’ ‘재수 (財數)’ 등에 ‘수 (數)’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에 공자는 ‘數로써 변화를 이루고 신묘 (神妙)한 귀신의 작용이 이루어진다’고 까지 한 것이다. 한편 만물의 만 (萬)과 우리 말의 ‘많다’는 서로 통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주역의 이치를 잘 알고 있던 우리 선현들이 금강산의 갖가 지 봉우리를 경탄어린 마음으로 감상하면서 천지 자연의 모든 것을 다 포괄한다는 뜻을 지닌 만물지수인 萬有一千五百二十 (11,520)을

    반올림해서 일만 이천봉이라 이름붙이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에 나오는 일만 이천의 보살 숫자 역시 『주역』의 만물지수(萬物之數)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 금강산이 일만이천봉이 된 이유

    ① 불교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에 ‘‘법기보살(法起菩薩)이 일만이천 권속(眷屬)과 항시 반야경(般若經)

    을 설법하고 있는 곳이 금강산이라’’ 고 했고, 신기하게도 온 산이 금강석처럼 단단한 돌로 이루어진 산이

    어서 금강산이라는 이름이 주로 쓰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②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어느날 풍악산(금강산)에 왔는데 내금강의 한 지점인 배점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법기보살이 일만이천 무리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태조는 황급히 엎드려 절을 했는데 그 절한 자

    리가 배점 (拜岾 또는 拜在嶺)이고, 법기보살이 나타나 광채를 발하던 곳을 방광대(放光臺)라 하여 그 자

    리에 정양사(正陽寺)를 세우고 왕건의 원찰로 삼았다고 한다.

    ③ 1307년 노영스님이 그린 법기보살출현도(法起菩薩出顯圖)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 그림이 가장 오래

    된 금강산 그림이면서 금강산의 이름과 일만이천봉이라는 유래를 말해 주는 것으로서 중앙박물관에 소

    장되어 있다. (출처 jst815)

    ④ 여지승람 회양도호부조에 하륜이 중을 보내는 시에서 황산을 금강산이라고 일컫는 것은 장경의 설

    을 빌린것이다. 장경에 말하기를, “동해속의 팔만유순의 곳에 달무갈(성인보살)의 무리 1만2천이 항상

    그 가운데 머문다 ”하였으니 풍악(금강산)을 말한 것이 아니다. 1만2천은 산이 아닌 달무갈(성인보살)의

    제자의 숫자를 말하는 것이다.

    ※ 일만이천은 보살의 제자들이 금강산에 출현한 숫자이지 봉우리 숫자는 아니다. 즉, 일만이천이 금강

    산과 연결되면서 봉우리숫자로 변경인식된 것이다. 강소천은 일제시대인 1930년대 후반에 동요 <금강산

    >에서 일만이천봉이란 표현을 썼고, 동요 금강산이 보급화되면서 전국민이 그리알게 되었다. 송병완 시

    인도 2000년대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짓게 되었다. 일제의 대륙과 반도와의 분리정책에 의해서 동요

    금강산을 전초등학교 학생들이 부르도록 한것으로 보인다. 즉, 일만삼천봉인 금강산을 대륙의 황산에서

    반도의 현 금강산으로 옮겨 심으면서 일만이천봉으로 바꾼 것이다. 이것도 역사왜곡의 일환이었다.


  • 금강산은 최고봉인 비로봉(1천6백38m)을 중심으로 주위가 80㎞에 이르며 강원도의 화양, 통천, 고성,인제의 4개 군에 걸쳐 있다.

    면적은 1백60㎢. 남북으로 길게 뻗은 금강산의 서쪽은 내금강, 동쪽은 외금강으로 분류한다.

    금강산은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해 해발 1천5백m 이상의 거봉이 10개에 이르며 1천m 이상의 준봉은 무려 60여개나 된다. 크고 작은 봉우리를 모두 합치면 헤아리기 어려워 선조들은 1만2천봉이라 했다.

    비로봉 북쪽에는 옥녀봉(1천4백24m), 상등봉(1천2백27m), 오봉산(1천2백64m), 선창산(1천2백26m), 금수봉(1천1백13m) 등이 우뚝우뚝 솟아있고 남쪽으로는 월출봉(1천5백80m), 일출봉(1천5백52m), 백마봉(1천5백10m) 등이 자리잡고 있다.

    동남쪽으로는 장군산(1천5백60m)과 채하봉(1천5백88m), 서쪽으로는 영랑봉(1천6백1m), 능허봉(1천4백56m) 등이 군소 봉우리들을 거느린채 위용을 자랑한다. 또 금강산에는 비로대, 천선대, 망군대, 백운대, 칠보대 등 20여개의 전망대와 만물상, 삼선암, 토끼바위, 사자바위 등 무수한 기암괴석을 품고 있다.

    봄에는 온산이 새싹과 꽃에 뒤덮이므로 금강이라 했고
    여름에는 녹음이 깔리므로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일만이천봉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나뭇잎이 지면서 앙상한 뼈처럼 드러나므로 개골산(皆骨山)이라 불렀다.


  • 금강산 봉우리를 직접 세어 보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금강산에는 1천개 정도의 봉우리가 있으며 봉우리 개념을 확대하여 최대한 수치를 늘려 잡는다 하더라도 3000~4000개 정도라고 한다 .

    그렇다면 왜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만 이천이라는 숫자를 사용했을까? <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 역시 왜 보살의 숫자를 일만 이천이라 했을까? 또한 보살과 봉우리가 무슨 관계일까? 천자자연의 이치를 밝혀놓은 『주역 (周易)』을 통해 추론 (推論)하건대, 공자가 『주역 (周易)』 계사전 (繫辭傳)에서 설명한 만물지수 (萬物之數)인 11,520을 반올림하여 나온 수자가 일만 이천이라는 數이다 .


  • 실제로 일만이천봉이라는 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정확히 일만이천봉이라고 하는건 상징을 뜻하는게아닐까요?

    우리나라는 이정도 봉(봉우리) 가 있다! 라는 상징 말일죠

    실제로 세보면 금강산은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해 해발 1천5백m이상의 거봉이 10개에 이르며 1천m이상의 준봉은 무려 60여개나 된다고 합니다.

    비로봉 북쪽에는 옥녀봉(1천4백24m), 상등봉(1천2백27m), 오봉산(1천2백64m), 선창산(1천2백26m), 금수봉(1천1백13m) 등이 우뚝우뚝 솟아있고 남쪽으로는 월출봉(1천5백80m), 일출봉(1천5백52m), 백마봉(1천5백10m) 등이 자리잡고 있고요.

    동남쪽으로는 장군산(1천5백60m)과 채하봉(1천5백88m), 서쪽으로는 영랑봉(1천6백1m), 능허봉(1천4백56m) 등이 군소 봉우리들을 거느린채 위용을 자랑합니다.

    제 생각엔 실제로 일만이천봉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순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 금강산은 강원도 북측에 있는 산입니다. 최고봉은 비로봉입니다.금강산이 1만2000봉이란말은 노래나 설화 지리지 등 각종 서적등에 나와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1만2000봉은 아니고, 그만큼 봉우리가 많다는 뜻입니다. 빨리 금강산 관광이 재개 되어서 금강산에 갈 수 있어으면 좋겠습니다..


  • 정확히 일만 이천봉우리는 아니지만..대략 그정도 있다고 합니다.

    제일 유명하고 큰 봉우리들이 비로봉(1,638m)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오봉산·옥녀봉·상등봉·선창산·금수봉, 서쪽에는 영랑봉·룡허봉, 남쪽에는 월출봉·일출봉·차일봉·백마봉, 동쪽에는 세존봉 등이 있다고 하네요...

    대체로 금강산은 요곡운동으로 형성되었으며, 화강편마암이 노출된 신금강의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조립질의 흑운모 화강암과 반상 화강암으로 형성되어 있어 절리가 발달되고 풍화침식이 잘되어서 각종 봉우리들이 잘 발달해 있다고 합니다.




  • 실제로 일만이천봉우리는 아닐겁니다. 하지만 그만큼 봉이 아주 많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굳이 유래를 찾아보자면 이렇게 나오네요!

    ① 불교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에 ‘‘법기보살(法起菩薩)이 일만이천 권속(眷屬)과 항시 반야경(般若經)

    을 설법하고 있는 곳이 금강산이라’’ 고 했고, 신기하게도 온 산이 금강석처럼 단단한 돌로 이루어진 산이

    어서 금강산이라는 이름이 주로 쓰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②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어느날 풍악산(금강산)에 왔는데 내금강의 한 지점인 배점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법기보살이 일만이천 무리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태조는 황급히 엎드려 절을 했는데 그 절한 자

    리가 배점 (拜岾 또는 拜在嶺)이고, 법기보살이 나타나 광채를 발하던 곳을 방광대(放光臺)라 하여 그 자

    리에 정양사(正陽寺)를 세우고 왕건의 원찰로 삼았다고 한다.

    ③ 1307년 노영스님이 그린 법기보살출현도(法起菩薩出顯圖)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 그림이 가장 오래

    된 금강산 그림이면서 금강산의 이름과 일만이천봉이라는 유래를 말해 주는 것으로서 중앙박물관에 소

    장되어 있다. (출처 jst815)

    ④ 여지승람 회양도호부조에 하륜이 중을 보내는 시에서 황산을 금강산이라고 일컫는 것은 장경의 설

    을 빌린것이다. 장경에 말하기를, “동해속의 팔만유순의 곳에 달무갈(성인보살)의 무리 1만2천이 항상

    그 가운데 머문다 ”하였으니 풍악(금강산)을 말한 것이 아니다. 1만2천은 산이 아닌 달무갈(성인보살)의

    제자의 숫자를 말하는 것이다.


  • 금강산은 면적은 약 530㎢이고, 1952년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전에는 회양(淮陽)·통천(通川)·고성(高城)·인제의 4개군에 걸쳐 있었다. 최고봉인 비로봉(1,638m)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옥녀봉(1천4백24m), 상등봉(1천2백27m), 오봉산(1천2백64m), 선창산(1천2백26m), 금수봉(1천1백13m) 등이 우뚝 솟아있고 남쪽으로는 월출봉(1천5백80m), 일출봉(1천5백52m), 백마봉(1천5백10m), 차일봉등이 있고, 삼선암, 토끼바위, 사자바위 등 무수한 기암괴석을 품고 있다. 동남쪽으로는 장군산(1천5백60m)과 채하봉(1천5백88m), 서쪽으로는 영랑봉(1천6백1m), 용허봉(1천4백56m) 등이,동쪽에는 세존봉등이 군소 봉우리들을거느린채 위용을 자랑한다. 또 금강산에는 비로대, 천선대, 망군대, 백운대, 칠보대 등 20여개의 전망대가 있습니다. 거봉이 10개에 이르며 1천m이상의 준봉은 무려 60여개나 된다. 크고 작은 봉우리를 모두 합치면 헤아리기 어려워 선조들은 1만2천봉이라 했습니다.

    1) 동요 금강산

    1.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 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네.

    2. 금강산 보고 싶다 다시 또 한 번
    맑은 물 굽이쳐 폭포 이루고
    갖가지 옛이야기 가득 지닌 산
    이름도 찬란하여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네.

    금강산 (강소천 작사 / 나운영 작곡)

    강소천[姜小泉, 1915~1963 : 한국의 아동문학가.본명 용률. 함남 고원 출생. 함흥 영생고보 졸업. 해방 후 청진여자고급중학등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월남하였다. 1930년 아이생활등에 동요 《버드나무 열매》 등을 발표하고, 동요 《민들레와 울아기》(1930)가 조선일보 현상문예에 당선되었다. 1939년을 전후하여 동화와 아동소설도 쓰기시작하여 금강산,돌멩이,토끼 삼형제, 전등불 이야기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아동문학》 편집위원, 한국보육대학 ·이화여대 ·연세대 강사, 아동문학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2) 송병완 금강산 일만이천봉 시집작성

    2000년 「대한겨레문학」시 부분 신인으로 등단한 송병완 시집. 2003년 7월 18일 몽골 태고의 지구 모습인 에싸라트헤이르한산을 보고 2004년 11월 30일 금강산을 여행한 것을 토대로 한 두번째 산(山) 시집이다. 한시 중간중간에 영시를 함께 수록하였다.

    시집목차

    - 서문
    1. 무등산을 바라보며 2. 그리운 금강산 3. 휴전선 허수아비 4. 민둥산 5. 금강산 소나무 6. 금강산 문필봉 7. 금강산 화상대 8. 금강산 일만이천봉 9. 금강산 연주담 10. 금강산 비룡폭포 11. 금강산 금강수야 12. 금강산 구룡폭포 13. 아름다운 강산 그리운 금강산 14. 운무 15. 금강산 장전항의 부르스 16. 금강산 식후경 17. 해금강 18. 관동팔경 삼일포 19. 아름다운 금강산아 20. 검봉산 .....

    3) <화엄경>에 동북쪽 바다 가운데에 금강산이 있는데 그곳에서 담무갈보살이 1만2천권속과 함께 항상 반야를 설법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금강산 일만이천봉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담무갈보살은 법을 일으키는 보살이므로 법기보살이라고도 부르는데요. 고려 태조 왕건이 금강산에 오르던 중 법기보살과 그 권속들을 친견하고 감격하여 그자리에 정양사를 세웠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도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북한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금강산(金剛山) 법기봉(法起峰)도 법기보살에서 이름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법기봉은 만폭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승려 보덕이 창건한 사찰. 암자. 627년(영류왕 10)에 보덕(普德)이 수도하기 위해서 자연굴을 이용하여 절을 창건하였고, 1115년(의종 10)에는 회정(懷正)이 중창하였습니다.

    ① 불교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에 ‘‘법기보살(法起菩薩)이 일만이천 권속(眷屬)과 항시 반야경(般若經)을 설법하고 있는 곳이 금강산이라’’ 고 했고, 신기하게도 온 산이 금강석처럼 단단한 돌로 이루어진 산이어서 금강산이라는 이름이 주로 쓰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②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어느날 풍악산(금강산)에 왔는데 내금강의 한 지점인 배점에 다다랐을 때갑자기 법기보살이 일만이천 무리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태조는 황급히 엎드려 절을 했는데 그 절한 자리가 배점 (拜岾 또는 拜在嶺)이고, 법기보살이 나타나 광채를 발하던 곳을 방광대(放光臺)라 하여 그 자리에 정양사(正陽寺)를 세우고 왕건의 원찰로 삼았다고 한다.

    ③ 1307년 노영스님이 그린 법기보살출현도(法起菩薩出顯圖)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 그림이 가장 오래된 금강산 그림이면서 금강산의 이름과 일만이천봉이라는 유래를 말해 주는 것으로서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④ 여지승람 회양도호부조에 하륜이 중을 보내는 시에서 황산을 금강산이라고 일컫는 것은 장경의 설을 빌린것이다. 장경에 말하기를, “동해속의 팔만유순의 곳에 달무갈(성인보살)의 무리 1만2천이 항상 그 가운데 머문다 ”하였으니 풍악(금강산)을 말한 것이 아니다. 1만2천은 산이 아닌 달무갈(성인보살)의 제자의 숫자를 말하는 것이다.

    ▲ 금강내산전도金剛內山全圖|비단에 색|54.5×33cm|Mt. Geumgangsan|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소장

    정리하면 일만이천은 보살의 제자들이 금강산에 출현한 숫자이지 봉우리 숫자는 아닙니다. 즉, 일만이천이 금강산과 연결되면서 봉우리숫자로 변경인식된 것입니다. 강소천은 일제시대인 1930년대 후반에 동요 <금강산>에서 일만이천봉이란 표현을 썼고, 동요 금강산이 보급화되면서 전국민이 그렇게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송병완 시인도 2000년대 <금강산 일만이천봉>으로 시집을 발간하였습니다.

    중국의 시선 이태백은 자신의 백발이 삼천장이요. 여산 폭포 높이가 삼천척이라고 과장을 하였고, 백제 의자왕의 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떨어졌다는 말이 있듯이 숫자는 그만큼 많았다라는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보는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1만2천봉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아래 과거에 금강산을 방문한 사람들의 글귀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송나라의 소동파(蘇東坡)가 말하기를 원생고려국 일견금강산 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 고려국에 태어나 금강산을 한 번 보는 게 내 소원

    일찍이 조선을 방문하여『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1894.이인화 역,1994.살림)이라는 저서를 펴낸 이사벨라 버드 비(I.B.Bishop,1831~1904)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세계 어느 명산의 아름다움도 초월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쓴 글은 한갓 목록에 지나지 않는다.
    미의 모든 요소로 가득 찬 이 대규모의 협곡은 너무도 황홀하여 사람을 마비시킬 지경이다.”

    1926년 당시 스웨덴의 황태자인 구스타프(Gustav Ⅵ Adolf, 1882~1973)가 신혼여행으로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을 때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하신 엿새 중 마지막 하루는 오직 금강산을 만드는 데 보냈을 것 같다”

    시인 고은 선생도 만물상의 기기묘묘한 영봉을 치켜 올려다 보고는 이렇게 영탄조로 말했다고합니다.
    “아! 미치겠구나! 이런 절경을 보고도 실성하지 않는 놈이 있다면 그놈이 실성한 놈이다.”

    조선시대 중인신분으로서 숙종 때 최고의 시인으로 손꼽히던
    창랑(滄浪) 홍세태(洪世泰·1653 ~ 1725)의 불금강행(不金剛行)

    "지금 금강산의 산빛이 먼데서 비치는데 나의 마음과 눈을 먼저 빼앗아가고 있으니
    내 재주와 역량으로는 도저히 저 신령스런 경치를 묘사해내지 못할 것 같다.
    나는 평범한 시구를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명산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금강산을 한번 본다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바인데, 나는 시 때문에 들어가지 못한다."

    글을 쓰다보니 금강산 죽기전에 한번 가보고 싶긴 하네요.


  • 실제로 일만이천봉이라는 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정확히 일만이천봉이라고 하는건 상징을 뜻하는게아닐까요?

    우리나라는 이정도 봉(봉우리) 가 있다! 라는 상징 말일죠

    실제로 세보면 금강산은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해 해발 1천5백m이상의 거봉이 10개에 이르며 1천m이상의 준봉은 무려 60여개나 된다고 합니다.

    비로봉 북쪽에는 옥녀봉(1천4백24m), 상등봉(1천2백27m), 오봉산(1천2백64m), 선창산(1천2백26m), 금수봉(1천1백13m) 등이 우뚝우뚝 솟아있고 남쪽으로는 월출봉(1천5백80m), 일출봉(1천5백52m), 백마봉(1천5백10m) 등이 자리잡고 있고요.

    동남쪽으로는 장군산(1천5백60m)과 채하봉(1천5백88m), 서쪽으로는 영랑봉(1천6백1m), 능허봉(1천4백56m) 등이 군소 봉우리들을 거느린채 위용을 자랑합니다.

    제 생각엔 실제로 일만이천봉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순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1.05.20


    1. 금강산이 일만이천봉이라 부르게 된 배경.


    1) 반도 금강산 개요

    금강산은 면적은 약 530㎢이고, 1952년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전에는 회양(淮陽)·통천(通川)·고성(高城)·

    인제의 4개군에 걸쳐 있었다. 최고봉인 비로봉(1,638m)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옥녀봉(1천4백24m), 상등

    봉(1천2백27m), 오봉산(1천2백64m), 선창산(1천2백26m), 금수봉(1천1백13m) 등이 우뚝 솟아있고 남

    쪽으로는 월출봉(1천5백80m), 일출봉(1천5백52m), 백마봉(1천5백10m), 차일봉등이 있고, 삼선암, 토

    끼바위, 사자바위 등 무수한 기암괴석을 품고 있다. 동남쪽으로는 장군산(1천5백60m)과 채하봉(1천5백

    88m), 서쪽으로는 영랑봉(1천6백1m), 용허봉(1천4백56m) 등이,동쪽에는 세존봉등이 군소 봉우리들을

    거느린채 위용을 자랑한다. 또 금강산에는 비로대, 천선대, 망군대, 백운대, 칠보대 등 20여개의 전망대

    가 있다.

    그림1= 반도 외금강 계곡(1998.12.19 현지답사)


    2) 가장 널리 국민에게 보급한 노래.동요 금강산에서 일만이천봉을 배웠다.


    금강산 (강소천 작사 / 나운영 작곡)

    [1절]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따라 고운옷 갈아입는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 이라네


    [2절]금강산 보고싶다 다시또한번

    맑은 물 굽이쳐 폭포이루고

    갖가지 옛이야기 가득지닌산

    이름도 찬란하여 금강이라네 금강 이라네


    강소천[姜小泉, 1915~1963]

    한국의 아동문학가.본명 용률. 함남 고원 출생. 함흥 영생고보 졸업. 해방 후 청진여자고급중학등에서 교

    편생활을 하다가 월남하였다. 1930년 아이생활등에 동요 《버드나무 열매》 등을 발표하고, 동요 《민들

    레와 울아기》(1930)가 조선일보 현상문예에 당선되었다. 1939년을 전후하여 동화와 아동소설도 쓰기

    시작하여 금강산,돌멩이,토끼 삼형제, 전등불 이야기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아동문학》 편집위원,

    한국보육대학 ·이화여대 ·연세대 강사, 아동문학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3) 송병완 금강산 일만이천봉 시집작성


    2000년 「대한겨레문학」시 부분 신인으로 등단한 송병완 시집. 2003년 7월 18일 몽골 태고의 지구 모습

    인 에싸라트헤이르한산을 보고 2004년 11월 30일 금강산을 여행한 것을 토대로 한 두번째 산(山) 시집이

    다. 한시 중간중간에 영시를 함께 수록하였다.


    4) 금강산이 일만이천봉이 된 이유


    ① 불교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에 ‘‘법기보살(法起菩薩)이 일만이천 권속(眷屬)과 항시 반야경(般若經)

    을 설법하고 있는 곳이 금강산이라’’ 고 했고, 신기하게도 온 산이 금강석처럼 단단한 돌로 이루어진 산이

    어서 금강산이라는 이름이 주로 쓰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②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어느날 풍악산(금강산)에 왔는데 내금강의 한 지점인 배점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법기보살이 일만이천 무리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태조는 황급히 엎드려 절을 했는데 그 절한 자

    리가 배점 (拜岾 또는 拜在嶺)이고, 법기보살이 나타나 광채를 발하던 곳을 방광대(放光臺)라 하여 그 자

    리에 정양사(正陽寺)를 세우고 왕건의 원찰로 삼았다고 한다.

    ③ 1307년 노영스님이 그린 법기보살출현도(法起菩薩出顯圖)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 그림이 가장 오래

    된 금강산 그림이면서 금강산의 이름과 일만이천봉이라는 유래를 말해 주는 것으로서 중앙박물관에 소

    장되어 있다. (출처 jst815)

    ④ 여지승람 회양도호부조에 하륜이 중을 보내는 시에서 황산을 금강산이라고 일컫는 것은 장경의 설

    을 빌린것이다. 장경에 말하기를, “동해속의 팔만유순의 곳에 달무갈(성인보살)의 무리 1만2천이 항상

    그 가운데 머문다 ”하였으니 풍악(금강산)을 말한 것이 아니다. 1만2천은 산이 아닌 달무갈(성인보살)의

    제자의 숫자를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