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2년 숙종 당시 청의 오라총관 목극동에 의해 조선과 청의 국경을 표시하기 위해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19세기에 와서 조선과 청은 간도 귀속 문제를 두고 백두산 정계비의 토문강 위치를 놓고 영토 분쟁을 했습니다.
1885년 조선의 이중하는 송하강 지류를 주장했으마, 청의 덕욱은 두만강이 토문강이라고 주장하면서 별다른 성과 없이 결렬되었습니다. 하지만 1907년 대한제국은 간도관리사를 파견하여 관리하였으나 1909년 청과 일본 사이의 간도협약으로 청의 영토로 편입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