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일빈 역에서 이토를 암살한 것은 그의 재판에서 15가지 명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안중근의 의사에 주장에 따르면 이토는 을사늑약을 강요했으며, 정미 7조약으로 군대 해산과 고종의 폐위, 한일 병합 준비를 했습니다. 또한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하고, 황성일보를 통해 한국을 비하고, 동양 평화를 위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비록 이토가 1909년 퇴임하였다고 하더라도 병합 실무를 총괄하고, 군부 실수인 야마가타, 전 총리 가쓰라보다 대외 상징적 인물입니다. 따라서 안중근 의사는 이토를 최우선으로 제거 대상으로 여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