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농민전쟁은 어떠한 전쟁이였나요?
역사관련 뉴스를 보다가,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났다고 보았습니다.
갑오농민전쟁은 농민들이 어떠한 이유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것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갑오농민전쟁』은 이후 30여년 뒤 1892년 무렵부터 시작하여 평범한
농민이자 민란 주도자의 후손인
오상민이 농민전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과정을 농민의 각성,
전봉준과의 사제 관계 등을
중심으로 풀어낸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갑오농민전쟁(甲午農民戰爭))]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고종31년 동학교도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봉건, 반외세 운동으로, 농민들이 궐기하여 부정과 외세에 항거했다고 하여 갑오농민전쟁이라고도 하는 이 동학농민혁명은 실패로 끝나지만 갑오개혁, 청일전쟁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1919년 3.1운동에도 영향을 미친 운동입니다.
1860년 최제우에 의해 동학이 창시되었는데, 동학은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봉건사회를 반대하고 서학과 왜를 배척하는 반외세사상을 주장하며 점차 그 교세가 확산되었습니다. 이에 조선의 위정자들은 동학을 사교로 금지하고 1864년 교조 최제우를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하는 등 동학교도들에 대한 탄압을 지속합니다.
그러나 동학 제2대 교주 최시형에 의해 동학은 농민들을 중심으로 더욱 확산, 조직화됐고, 이후 동학의 창시자였던 최제우의 억울함을 해소하고 동학교도들에 대한 탄압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교조신원운동이 전개됩니다.
그러나 교조신원운동 이후 정부의 묵살은 계속되고 전라도군수 조병갑의 불법착취와 동학교도 탄압에 대한 불만은 최고조가 됩니다.
이에 동학교도들은 1894년 1월 전봉준을 중심으로 전라도, 충청도 일대 농민들을 모아 고부 관아를 습격해 고부민란을 일으키고 관아를 점령한 전봉준은 정부에 조병갑의 횡포를 시정할 것과 외국 상인의 침투를 금지하라는 등의 요구사항을 제시, 정부로부터 폐정을 시정하겠다고 약속을 받고 10일여만에 해산합니다.
그러나 고부민란을 조사하러 온 안핵사 이용태는 오히려 민란 관련자들을 역적죄로 몰아 탄압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갑오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갑오농민운동(甲午農民運動), 갑오농민전쟁(甲午農民戰爭)이라고도 합니다.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민씨 정권에서는 청나라군과 일본군을 번갈아 끌어들여 결국, 농민 운동 진압 후 청일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의 원인은 일본의 경제적 침투로 농민의 생활이 어려워져 갔는데 그러나 정부는 농민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농민들은 그들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혁을 주장하며, 외세의 침략을 막고 나라를 지키려는 대규모의 농민 운동 확산 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