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왕은 대외적으로 스스로를 안남의 왕이라 칭해 중국의 예속국임을 인정하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스스로를 황제라고 칭하는 등 중국과 동등하는 의식을 가지는 외왕내제 체제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왕조에 새로운 임금이 즉위할 때마다 중국 황제로부터 책봉을 받아야 정식으로 등극할 수 있었고,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황조 역시 당초 국호를 남월로 지으러 하였으나 중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아 글자 순서를 바꿔 월남이라고 짓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베트남으로부터 코끼리와 같이 귀한 것들을 조공 받았을뿐만 아니라 베트남의 왕에게 중국 전통질서를 강요했습니다. 이로 인해 베트남 왕실의 통치방식은 유교사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고, 19세기 응우옌 왕조의 외교 정책 역시 천명 (天命)개념과 중국 유교의 이론을 바탕으로 진행되었고. 응우엔 왕조의 제 2황제인 민망 황제는 국호를 대베트남으로 바꾸었고, 주변 국가들에게 조공을 바치도록 강요하여 속국 체제를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베트남과 중국의 조공 관계는 서양의 제국주의 팽창으로 인해 종식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햇을때 힘이 없어서 속국으로 오랜 기간동안 살아 오다가 서양의 제국주의 팽창으로 인해 독립의 기회가 찾아 온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