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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스컹크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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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가 결사항전을 주장한 이유가 있나요?

이미 더이상 신라로서는 서라벌 너머에 대한 영향력이 존재하지않고있어서 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강경한 성품이라는 개인적 성향말고 마의태자가 결사항전을 주장한 이유가 있나요?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인문·예술 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마의태자는 사실상 국가가 유지되면 자기가 왕이 될 수 있는데, 항복해 버리면 가장 손해 보는 건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에 항전을 주장했던 것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의 태자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태자입니다. 경순왕은 후백제 견훤(甄萱)과 고려 왕건(王建)의 세력에 눌려 더이상 국가를 보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935년(경순왕 9) 나라를 들어 고려에 귀부(歸附)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마의태자는 나라의 존망에는 반드시 천명(天命)이 있으니 힘을 다하지 않고 1000년 사직을 가벼이 남에게 넘겨줄 수 없다고 하여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을 더이상 죽일 수 없다 하여 시랑 김봉휴(金封休)를 시켜 국서를 보내어 고려에 항복하였고, 마의태자는 통곡하며 왕을 하직하고 개골산(皆骨山)으로 들어가 바위에 의지하여 집을 짓고 초식으로 연명하며 일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의태자는 효종랑의 손자였으며, 효종랑은 화랑도의 낭주였기 때문에 마의태자는 화랑도의 영향을 깊게 받아서 신라의 사직을 넘겨주자는 주장에 강하게 반발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의 왕건이 사실상 후삼국시대를 통일할 가능성이 확실해졌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당시 신라의 임금이었던 경순왕은 대세에 따라 스스로 고려에 항복하기로 결심했는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935년 10월 경순왕이 나라 존망이 위태롭게 되자 군신 회의를 소집하여 신라의 천년 사직을 고려에 바치는 항복을 논하는 자리에서 마의태자는 동생 덕지(德摯) 왕자 및 이순유(李純由) 등과 함께 불가함을 극력 간(諫)하였으나 결국은 경순왕의 뜻을 막지 못했다고 합니다. 935년 11월 이미 고려에 입조할 뜻을 전한 경순왕이 개경으로 옮겨가자 그는 동생 덕지(德摯) 왕자와 함께 개골산에 들어가 바위 아래에 집을 짓고 마로 된 옷을 입고 풀잎을 먹으며 초근 목피 하였고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