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보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었나요?
지금도 각종 공인 시험을 보려면 비용이 드는데요. 조선시대 거의 유일했던 시험이라고 볼 수 있는 과거시험은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볼 수 있었던 시험인가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과거시험은 한양에서 치러졌기 때문에, 지방에서 응시하는 사람들은 한양으로의 이동비가 필요했습니다. 이동비는 거리에 따라 달라졌는데, 서울에서 가까운 지방에서는 200~300리 정도의 거리에 한 달 정도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는 1,000리 정도의 거리에 3~4개월 정도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과거시험은 유교 경전과 역사, 문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시험 준비를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책값, 서당 수업료, 숙식비 등이 필요했습니다. 책값은 책의 종류와 양에 따라 달라졌는데, 보통 100~200냥 정도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서당 수업료는 1년에 10~20냥 정도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숙식비는 하루에 1~2냥 정도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비용을 합치면,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보려면 최소한 100냥 이상의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이는 당시 양반의 한 달 품삯의 10~20배에 달하는 금액이었습니다. 따라서, 과거시험은 양반이나 부유한 상민들만이 도전할 수 있는 시험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과거시험에 합격할 능력이 있지만 혈연, 지연 등 여러 인맥에서 밀려난 힘없는 사람들은 직접 과거에 응시 하지 않고 대리 시험을 쳐주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거벽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듯 경제적 이유로 인해 과거시험을 포기 하거나 대리 시험을 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집이 가난하면 엄청난 과거 준비 비용(한양 노잣돈, 숙식비 등)을 감당할 수 없었다. 무과에 급제한 노상추는 과거를 준비하느라 상속받은 토지를 하나씩 팔아치웠는데, 논 9마지기와 밭 90마지기가 10년 만에 대지 5마지기와 밭 8마지기로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