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동학농민운동은 왜 1차와 2차 봉기로 나뉘어 다른 성격을 보였나요?

동학농민운동이 1차 봉기와 2차 봉기로 나뉘는데, 1차는 반봉건적 성격이 강했고 2차는 반외세적 성격이 강했다고 들었어요. 왜 이렇게 성격이 달라지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1894년 1월 고부농민봉기는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항거한 농민 봉기이며, 이후 3월 1차 봉기는 이용태의 탄압에 항거하여 봉기한 것입니다. 황토현, 황룡촌 전투 승리와 전주성 장악을 통해 기세를 올린 동학군은 정부와 폐정개혁을 약속한 전주화약을 체결하는데, 주로 탐관오리 처단, 신분제 폐지 등 반봉건적인 개혁 운동의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하지만 9월이 일어난 2차 봉기는 일본군이 경복궁을 기습 점령하고, 고종을 인질로 삼은 것에 반발하여 '척왜'를 주장하며 일어났습니다. 특히 동학군은 한양을 점령하여 일본군을 몰아내고, 고종을 구출하는 것을 목표로 상경을 추진하였습니다. 따라서 2차 봉기는 반외세적인 항일 투쟁의 성격이 봉기입니다.

    즉, 1차 봉기는 오랜 조선 사회의 봉건적 구조를 타파하려는 반봉건, 2차 봉기는 일본의 침략을 물리치려는 반외세, 반제국주의적 성격의 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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