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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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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실록 같은 것은 사고시 대비책이 있었나요?

과거에는 지금처럼 온라인 데이터베이스화를 하지 못하니

한 곳이 불이 난다거나 홍수가 난다거나 하면 서적이 아예 소실되어 버릴 위험이 있었을 거 같은데

그런 시절에도 실록을 편찬할때 그런 것을 감안해서 몇 부 발행을 한 다음에 여러 곳에 나눠서 보관이나 원본을 여럿 나누어두는 등의 백업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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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업을 철저히 한 것이 조선왕조 실록입니다.

      세종실록부터 실록이 완성되면 복사본의 오,탈자를 막기 위해 활자로 4부를 인쇄, 한양의 춘추관에 한부, 나머지 3부는 지방에 사고를 설치해 보관해 3년에 한번씩 꺼내 볕에 말리는 포쇄 작업으로 곰팡이가 슬거나, 좀이 먹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조 실록은 확실한 백업 장치가 있었습니다. 조선왕조는 실록을 편찬하면 4부를 만들어서 서울의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에 있는 4대 사고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으로 전주 사고만 남고 세 곳 모두 불에 타버리고 말았는데요 전주사고가 무사했던 이유는 전주의 한 선비가 64 상자나 되는 실록을 전주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정읍 내장산으로 옮겨 놔서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