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사변 당시에 흥선대원군은 어느 정도 개입을 했나요?
사극이나 영화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일본군에 의해 을미사변 현장으로 끌려갔다는 식으로 묘사하는데,
실제로는 흥선대원군과 일본 미우라 고로 사이에 뭔가 밀약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어느 정도 개입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성황후 축축을 원한 흥선대원군은 일본과 손을 잡는데, 을미사변 전 8월 16일 일본인 궁내부 고문관 오카모토 류노스케는 공덕리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별장을 방문, 그는 별장 사랑에서 흥선대원군에게 자신들이 명성황후 일파를 축출해 주는 대신 거사 후 대군주를 보필해 궁중을 감독하되 정사는 내각에 맡겨 일체 간섭하지 말라는것과 이준용을 3년 기한으로 일본 유학을 보내라는 등의 4가지 조건의 사실상 대원군 정계은퇴를 강요하는 각서를 제시, 자필확인을 받습니다.
실행 일자는 적당한 날을 택해 흥선대원군에게 통보해 주기로 합니다
일본은 출발에 앞서 명문 확보를 위해 흥선대원군으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 취지를 밝히는 고유문을 발표하게 했고 그것을 한양 시내에 붙였습니다.
을미사변 동안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내 강녕전에서 휴식을 취하며 사태의 진전을 봤고,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을미사변을 주도, 실행 또한 일본이 했지만 흥선대원군은 명분 면에서 도움을 준것입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을미사변은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일본군과 낭인들을 동원해 일으킨 조선 국모시해사건으로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가 비록 정적으로 적대덕 관계였지만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집권을 원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이것은 일제가 흥선대원군을 끌어들이기 위한 술책으로 보이는 잔꾀에 불과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