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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은 일본의 개선문이였다는데 사실인가요?

우리나라 국보1호인 남대문은 임진왜란당시 일본의 개선문이였다는 말이 있는데요.

정말로 남대문이 일본의 개선문이였는지 궁금합니다.

역사적인 사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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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한바다꿩186
    환한바다꿩186

    안녕하세요. 김대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숭례문은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398년 조선시대에 완성된 건물입니다. 성곽의 정문 역할을 하였고 남쪽에 있다고 하여 남대문이라고 부릅니다.

    임진왜란이 있던 1592년 일본군의 선봉인 '가토 기요마사' 숭례문을 통해 입성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일본은 숭례문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한양 점령'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여겼으며,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고 오랜 대륙 진출을 이뤄낸 자신들의 역사를 빛내는 시초의 건축물로 취급 했습니다. 일제 감정기 시절 조선 주둔군 사령관이었던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교통 장애를 이유로 숭례문 제거를 추진하였지만 당시 한성신보의 사장 겸 일본인 거류민단장이었던 '나카이 기타로'가 "숭례문은 '가토 기요마사'가 한양으로 입성한 문입니다. 조선출병(임진왜란) 당시 건축물은 숭례문 외에 몇 남지 않았는데, 파괴하는 것은 아깝습니다."라고 설득 하였다는 내용이 오타 히데하루의 논문 <근대 한일 양국의 성곽 인식과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 정책>에 실려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의 보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명목하에 일련번호를 부여하면서 숭례문(남대문)을 보물 1호로 지정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조선총독부의 문화재 지정을 참고해서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하게 됩니다. 숭례문은 일본의 전승 기념물로 여겨졌기 때문에 철거 없이 보존될 수 있었고 국보까지 지정될 수 있던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부 기사에 따르면 일제시대 때 철거 위기에 놓인 숭례문은 임진왜란 당시의 '전승개선문'이라는 상징성으로 인해서 살아남았고 흥인지문(동대문) 역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이 입성한 문이라는 이유로 살아남았다는 내용이 존재합니다.

    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5389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숭례문은 1934년 8월 30일 조선총독부고시 430호에 의거 조선 유물 581점을 보물로 지정 고시할때 유독 숭례문은 경성남대문, 흥인지문은 경성동대문으로 서류상으로 교묘히 개명 후 다음 조선의 보물 1호, 보물2호로 지정한 것을 1955년 대한민국의 문화재위원회에서 그대로 승계하여 남대문을 국보1호로 승격, 동대문은 보물2호에서 보물 1호로 올려 오늘날 숭례문이 대한민국 국보1호가 되고 흥인지문이 보물1호가 된 것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또오 기요마사가 숭례문을 통하여 조선왕도 한양성을 함락시키고 고니시 유끼나가가 흥인지문을 통하여 한양성을 함락시켰기때문에 일본 입장에서 보면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임진왜란에서 일본이 조선 땅에서 대승을 거둔 전승기념물인 동시에 개선문이 됩니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조선인의 민족정기를 끊고 기개를 꺾어 버리면서 한없는 좌절감과 패배주의를 심어주기 위한 상징적이고도 고차원적인 식민지 전략의 일환으로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