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난 이후 조선 후기는 사회, 경제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리학적 지배 질서에 의존한 조선은 성리학으로 현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상실되었습니다. 성리학은 이, 기 등 추상적 윤리에 집중했으며, 현실, 경제, 기술, 제도 개선에는 실질적으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즉 성리학은 말과 글에 만 집중한 공허한 이론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조선 사회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학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토지 제도의 개혁을 바탕으로 국가 제도를 개혁하려는 중농주의 실학과 상공업 육성과 기술 개발을 통해 부국강병을 도모하려는 중상주의 실학이 발달했습니다.
중농주의 실학자 가운데 유형원은 균전제, 이익은 한전제, 정약용은 여전제와 정전제를 통한 토지 개혁으로 바탕으로 자영농을 육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군사, 교육, 사회 개혁을 추구하려 했습니다. 반면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는 청과 무역과 상업을 육성하고 기술 개발을 통해 백성들의 후생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