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종은 인조반정당시 왜 순순히 포기하고 자살했나요?
인조반정당시어 박승종은 자신의 아들인 경기감사와 수원부사 조유도, 양주 목사의 병력도 한양으로 집결하게 했지만 궁궐이 장악되자 바로 포기하고 자살했는데 탈환을 왜 시도조차하지않고 자살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조반정(1623)이 일어나자 영의정으로 있던 박승종은 아들 경기감사 박자흥을 오라고 하여 절간으로 들어가 같이 자결하였습니다. 당시 아버지 박승종은 62세이고, 아들 박자흥은 43세로 세자의 장인입니다. 평소 광해군이 패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늘 주머니 속에 독약을 넣고 다니면서 변을 당할 대 자결하려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상을 잃어버려(?) 하인에게 목을 매게하여 죽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네요.)
박승종은 역모가 일어나기 전에 그 조짐을 경계하였다고 하고, 반정이 일어나자 군사를 모아 공략하려고 하였으나 조정이 이미 반정 세력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중지하였습니다. 아마도 항상 자결을 준비한 것도 이유이지 않을까 봅니다.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승종은 왕이 바뀌었다는 소식도 들었고, 이미 사태를 바꿀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더 이상 피를 흘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박승종은 이런 사태를 대비해 항상 비상을 지니고 다녔는데, 이때 급히 나오다가 비상을 놓고와 결국 목을 메 자결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승종과 같은 경우 궁궐이 점령되고 임금이 바뀌었다는 말을 듣는 등
이에 따라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자결한 것으로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