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니요
우선, 서당은 특정나이에 졸업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10대~20대 까지 졸업나이가 다양했구요
가문이 돈이 좀 있어야 서당에 다닐수 있었기 때문에
그냥 가문일 하면서 먹고 살 수있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시험은 여러종류가 있어요
무인뽑는 무과랑 수능선택과목비슷한 느낌인 잡과는
비교적 뽑히기 쉬웠구요
메인인 문과에서도 시험을 여러번 봤고, 한번만 합격해도 취직이 문제 없었습니다
우선 소과라는 시험이 있는데 생원과/진사과 로 나뉘어서 각 과목별 최대 700명 씩을 뽑습니다(서울200명+지방500명) 여기서 합격만 해도 지방관청에서 일 할 쉬있구요
그 다음 복시 라는 추가시험을 봐서 200명을 뽑고
이 200명에겐 성균관 입학자격을 줍니다. 현대한국으로 따지면 대학원에 해당되죠
.
그다음 성균관공부 300일 이상 한 사람을 대상으로 본시험인 대과를 치뤄서 초시로 240명을, 복시로33명을 뽑습니다.
이33명이 조정에 바로 취직하는 성공한 인생이고
마지막으로 왕이 직접 참여하는 전시를 치뤄서 33명의 등수를 나눕니다.
조선초기에는 3대동안 과거 합격자가 없으면 양반자격이 박탈되었고. 후기에는 과거합격이 가문의 빽을 증명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대과응시" 정도는 가문마다 한명쯤은 꼭 해야 한단 느낌이긴 했지만
죽기전에 한번만 합격하면 되기 때문에
현대의 수능이랑은 많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