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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때까치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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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서당(학교)에서 졸업을 한 학생들은 모두 과거시험에 응시하는 진로만 가졌나요?

조선시대에 서당을 다니고 졸업까지 한 수많은 학생들은 결국 과거시험 급제를 목표로 진로를 설정했나요? 그럼 학교를 졸업하고도 과거시험에 합격을 못하면 어떤 생활을 하게 됐나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서당은 오늘날 초등교육 기관에 해당됩니다. 서당은 유교의 기본 서적을 읽고 해석하는 강독과 글짓기의 제술, 습자 교육을 담당하였습니다. 과거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향교, 서원에 등에서깊이 있는 학문을 연마하여야 가능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니요

      우선, 서당은 특정나이에 졸업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10대~20대 까지 졸업나이가 다양했구요

      가문이 돈이 좀 있어야 서당에 다닐수 있었기 때문에

      그냥 가문일 하면서 먹고 살 수있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시험은 여러종류가 있어요

      무인뽑는 무과랑 수능선택과목비슷한 느낌인 잡과는

      비교적 뽑히기 쉬웠구요

      메인인 문과에서도 시험을 여러번 봤고, 한번만 합격해도 취직이 문제 없었습니다

      우선 소과라는 시험이 있는데 생원과/진사과 로 나뉘어서 각 과목별 최대 700명 씩을 뽑습니다(서울200명+지방500명) 여기서 합격만 해도 지방관청에서 일 할 쉬있구요


      그 다음 복시 라는 추가시험을 봐서 200명을 뽑고

      이 200명에겐 성균관 입학자격을 줍니다. 현대한국으로 따지면 대학원에 해당되죠

      .

      그다음 성균관공부 300일 이상 한 사람을 대상으로 본시험인 대과를 치뤄서 초시로 240명을, 복시로33명을 뽑습니다.

      이33명이 조정에 바로 취직하는 성공한 인생이고

      마지막으로 왕이 직접 참여하는 전시를 치뤄서 33명의 등수를 나눕니다.


      조선초기에는 3대동안 과거 합격자가 없으면 양반자격이 박탈되었고. 후기에는 과거합격이 가문의 빽을 증명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대과응시" 정도는 가문마다 한명쯤은 꼭 해야 한단 느낌이긴 했지만

      죽기전에 한번만 합격하면 되기 때문에

      현대의 수능이랑은 많이 다릅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닙니다.

      서당에 졸업한다고 하더라도

      과거 시험에 모두 응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