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많은 대기업이 하청업체(협력사)와의 계약 시 하청업체가 '겨우 생존할 수 있는 수준'의 최소 마진만 남기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조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고사하지 않을 만큼만 피를 공급한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대기업이 하청업체 마진을 짜내는 방식>
CR (Cost Reduction, 단가 인하 압박): 대기업과 거래하는 하청업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단어입니다. 대기업들은 매년 혹은 분기마다 효율성 향상, 생산성 개선을 이유로 일정 비율(예: 매년 3~5%)의 공급 단가 인하를 요구합니다. 기술을 개발해 원가를 줄여도, 그 이익을 하청업체가 가져가는 게 아니라 대기업이 단가 인하로 회수해 가는 구조입니다.
원가 산정의 불투명성: 계약 시 하청업체의 노무비, 재료비, 제조간접비 등을 꼼꼼히 제출받은 뒤, 대기업 기준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마진율을 강제로 고정(보통 3~7% 수준)해 버립니다. 심지어 하청업체의 관리비나 고정비는 원가로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의 전가: 철강, 구리, 플라스틱 등 원자재 가격이 폭등해도 이를 공급 단가에 즉각 반영해주지 않고 하청업체가 감당하도록 버티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이를 막기 위해 '납품대금 연동제'가 도입되었으나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합니다.)
<왜 이런 계약 구조가 만들어질까?>
독과점적 지위 (수요독점): 대기업은 하나인데, 그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고 싶어 하는 하청업체는 수십, 수백 개입니다. "이 가격에 안 할 거면 나가라. 뒤에 줄 선 업체 많다"라는 독점적 지위가 무기가 됩니다.
글로벌 가격 경쟁력 확보: 대기업들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애플, 테슬라, 폭스바겐 등 전 세계 기업들과 가격 경쟁을 벌여야 합니다. 자신들의 완제품 가격을 낮추거나 마진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인 '공급망(하청업체) 쥐어짜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청업체의 종속성: 많은 하청업체가 매출의 70~90% 이상을 특정 대기업 한 곳에 의존합니다. 마진이 거의 남지 않더라도 공장을 돌리고 직원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예 계약에 가까운 조건을 수용하게 됩니다.
<이로 인한 부작용과 최근의 변화>
이러한 '수직계열화 짜내기'는 단기적으로 대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치명적인 약점을 낳습니다.
기술 투자 실종: 하청업체가 돈을 벌어야 R&D(연구개발)를 하고 고스펙 인재를 채용해 부품 퀄리티를 높이는데, 당장 내일 부도를 걱정해야 하니 기술 발전이 정체됩니다.
공급망 붕괴: 한계에 달한 하청업체가 도산하면 대기업의 전체 생산라인이 멈추는 리스크(예: 과거 차량용 반도체나 와이어링 하네스 사태)가 발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