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체는 양반가에서만 이용했나요?
조선시대에 여성들이 머리에 사용한 가체는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고하던데가체는 양반가 이상의 사람들만이 사용한 것인가요? 돈이 있으면 그 이하 신분도 사용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얹은 머리에 사용된 가채는 경제적으로 살만한 서민들이나 기생들이 주로 하고 다녔으므로 양반 뿐 아니라 그 이하 신분도 가능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체는 여자의 머리 숱을 많게 보이게 하거나 머리모양을 꾸미기 위해 머리 위에 얹거나 덧넣어 딴 머리를 의미합니다. 흔히 다래 또는 다레라고도 하는데 표준말은 다리입니다. 통일신라시대에도 사례가 있었고 고려시대에도 기록에 남아있는데 특히 조선시대에는 부녀자 수식의 절대적 기준이 되었습니다. 머리 장식을 위해 가산을 탕진을 물론 나이 어린 신부 방에 시아버지가 들어오자 놀란 신부가 일어나다 목뼈가 부러진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 가체를 마련하지 못한 집에서는 혼례를 치르고도 시부모 보는 예를 행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영조 때는 가체를 금하고 족두리 사용을 권하였으나 완전한 금체를 이루지는 못하였다고 합니다. 정조 때 사대부의 처첩과 어염집 부녀는 가체는 물론 본머리에 다리를 붙이는 것도 금지하고 천한 신분의 여인은 머리얹은 것은 허용하되 다리를 드리거나 더 얹은 것은 금지하는 금지령을 내렸으나 이루어지지 않다가 순조 때에 비로소 사라졌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초기까지는 양반가에서만 사용하였지만 왜란과 호란을 겪은 중기 이후부터는 양반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그 이하의 신분에서도 가체를 사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체는 양반 만이 아니라 기생들도 사용 했습니다. 당시 가체는 여인들이 누구나 한 번 쯤 해보고 싶은 오늘날의 명품 장식 용구 였습니다. 왕실 뿐 아니라 기녀들도 이쁘게 보이고 싶은 것은 다 같은 마음 이였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