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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얀굴뚝새243
뽀얀굴뚝새24323.08.12

조선시대 왕들은 누가 있으며, 업적이 궁금합니다.

학교 다닐 때 배우고 다 잊어 먹어서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알아야 앞으로 미래도 거울 삼아 더 잘할 수가 있을 텐데요.

조선시대 때의 업적을 공부하고 역사 공부에 더 관심을 가지고 싶어서 질문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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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조 [太祖, 1335~1408]


    조선의 제1대 왕(재위 1392∼1398).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로서 요동정벌을 위해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폐하였다. 막강한 권력으로 전제개혁을 단행하였고 신진세력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여 조선(朝鮮)을 세우고 도읍을 한양(漢陽)으로 옮겨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정종 [定宗, 1357~1419]



    조선 제2대 왕(재위 1398~1400). 제2차 왕자의 난이 수습된 뒤 왕위에 올랐으며, 재임 2년 후 보위를 이방원에게 양위하였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태종 [太宗, 1367~1422]



    조선 제3대 왕(재위 1400∼1418). 아버지 이성계 휘하에서 구세력 제거에 큰 역할을 하였으나 세자책봉에 불만을 품고 정도전 등을 다이하게하는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즉위 후, 의정부(議政府), 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를 설치하는 등 관제개혁을 통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최고의 법사(法司)인 의금부(義禁府)도 설치하였다.



    세종 [世宗, 1397.4.10(음)/5.15(양)~1450.2.17]


    조선 제4대 왕(재위 1418~1450). 젊은 학자들을 등용하여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였으며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측우기 등의 과학 기구를 제작하게 했다. 6진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고 쓰시마섬을 정벌하는 등 정치·경제·문화면에 훌륭한 치적을 쌓았다.



    문종 [文宗, 1414~1452]


    조선의 제5대 왕(재위 1450∼1452). 세종의 맏아들. 20년 간 세자로 세종을 보필했다.《동국병감》,《고려사》등이 편찬되었다. 병제를 정비하여 3군의 12사를 5사로 줄였고, 병력을 증대시켰다.



    단종 [端宗, 1441~1457]


    조선 제6대 왕(재위 1452∼1455).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되었다. 이후 단종복위운동을 하던 성삼문 등이 사망을 당하자 서인으로 강등되고 결국 죽음을 당하였다.



    세조 [世祖, 1417~1468]


    조선 제7대 왕(재위 1455~1468). 1428년 수양대군에 봉해졌다. 무인세력을 휘하에 두고 야망의 기회를 엿보다가 1453년 10월 무사들을 이끌고 김종서를 다이하게 한 뒤 사후에 왕에게 알리고 왕명으로 중신들을 소집, 영의정 황보인, 이조판서 조극관, 찬성 이양 등을 궐문에서 다이하게하고 좌의정 정분 등을 유배시켰다.



    예종 [睿宗, 1450~1469]


    조선 제8대 왕(재위 1468∼1469)으로 재위 13개월 만에다이했다. 재위 중 직전수조법(職田收租法)을 제정하여 둔전(屯田)의 민경(民耕)을 허락하였다.



    성종 [成宗, 1457~1494]


    조선 제9대 왕(재위 1469∼1494). 세종·세조의 치적을 기반으로 문화정책을 폈다. 숭유억불 정책을 철저히 시행했고 《경국대전》과 이를 보충한 《대전속록》을 간행했다. 조선 전기의 문물제도는 성종 때 거의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연산군 [燕山君, 1476~1506]


    조선 제10대의 왕(재위 1494∼1506). 많은 신진 사류를 살해하는 무오사화를 일으키고 생모 윤씨의 폐비에 찬성했던 윤필상 등 수십명을 살해하였다. 또한 경연을 없애고 사간원을 폐지하는 등 비정(秕政)이 극에 달하여 결국 중종반정에 의해 폐왕이 되었다.



    중종 [中宗, 1488~1544]


    조선 제11대 왕(재위 1506∼1544). 연산군 시대의 폐정을 개혁하였으며, 조광조 등 신진사류(士類)를 중용, 왕도정치를 시도하였으나, 지나치게 이상적인 개혁방법이 훈구파의 반발을 초래,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켜 신진사류를 사형하였다. 이후 신사무옥(辛巳誣獄), 삼포왜란 등으로 정국은 혼미를 거듭하였다.



    인종 [仁宗, 1515~1545]


    조선 제12대 왕(재위 1544~1545). 기묘사화로 폐지되었던 현량과를 부활하고 기묘사화 때의 희생자 조광조 등을 원통함을 풀어주는 등 어진 정치를 행하려 하였으나, 병약하여 포부를 못 편채 30세에 다이헸다.



    명종 [明宗, 1534~1567]


    조선 제13대 왕(재위 1545∼1567). 중종의 둘째 적자(嫡子)이자 인종의 아우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첨정 하였다.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이 을사사화를 일으켰으며 문정왕후 사후, 선정을 펼치려 노력하였다.



    선조 [宣祖, 1552~1608]


    조선 제14대 왕(재위 1567∼1608). 처음에는 많은 인재를 등용하여 국정 쇄신에 노력했고 여러 전적을 간행해 유학을 장려했다. 그러나 치열한 당쟁 속에 정치기강이 무너져 치정의 방향을 잡지 못했고 두 차례의 야인(野人)의 침입과 임진왜란을 당했다.



    광해군 [光海君, 1575~1641]


    조선의 제15대 왕(재위 1608~1623). 임진왜란 기간 동안 국가 안위를 위해 많은 공을 세웠으며, 전쟁이 끝난 후 대북파의 지지를 얻어 왕이 되었다. 즉위 후 당쟁의 폐해를 억제하려 하였으나 대북파에게 책동되었으며 인조반정으로 유배되어 다이하였다. 서적 편찬, 사고 정비, 대동법을 실시하였으며 명, 후금과 양면외교정책을 행했다.



    인조 [仁祖, 1595~1649]


    조선의 제16대 왕(재위 1623~1649). 광해군 때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 정책을 썼다. 난국 속에서도 군제를 정비해 총융청 · 수어청 등을 신설했으며, 북변 방위와 연해 방위를 위하여 여러 곳에 진을 신설했다.《동사보편》등의 서적도 간행되었고, 송시열 · 송준길 등의 대학자·대정치가가 배출되기도 했다.



    효종 [孝宗, 1619~1659]


    조선 제17대 왕(재위 1649∼1659).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서의 8년간 볼모생활 중 그 설욕에 뜻을 두어, 즉위 후 은밀히 북벌계획을 수립, 군제의 개편, 군사훈련의 강화 등에 힘썼다. 그러나 북벌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청나라의 강요로 러시아 정벌에 출정하였다.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했고, 상평통보(常平通寶)를 화폐로 유통시키는 등 경제시책에 업적을 남겼다.



    현종 [顯宗, 1641~1674]


    조선시대 제18대 왕(재위 1659∼1674). 효종의 아들이다. 효종의 상례(喪禮)시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의 복상문제(服喪問題)에 서인의 기년설(朞年說:1년설)을 채택하고, 어머니 인선왕후가 다이하자,,,,, 2차 복상문제에서 남인의 기년제를 채택, 재위 중 남인과 서인의 당쟁이 계속되어 국력이 쇠퇴해졌다.



    숙종 [肅宗, 1661~1720]


    조선 제19대 왕. 대동법을 전국에 실시하여 실효를 거두었으며 임진왜란 · 병자호란 이후 계속된 토지사업을 추진해 완결을 보았다. 주전을 본격적으로 실시해 상평통보를 주조, 중앙관청 및 지방관청 등에 통용하도록 했다. 영토 회복 운동을 전개했고 금위영을 추가로 설치하여 5영체제를 완결했다.



    경종 [景宗, 1688~1724]


    조선의 제20대 왕(재위 1720∼1724). 재위 동안은 노론, 소론 당쟁의 절정기였다. 이복동생인 세제(영조)가 노론의 지지로 대리청정하다가, 소론의 지지로 다시 친정했다. 김창집 등 노론 4대신을 사사, 노론을 모두 숙청한 신임사화가 있었다.



    영조 [英祖, 1694~1776]


    조선의 제21대 왕(재위 1724~1776). 탕평정책을 시행하여 붕당의 대립을 완화하였고 여러 차례 사치풍조 금단의 조치를 내렸다.



    정조 [正祖, 1752~1800]


    조선 제22대 왕(재위 1776~1800). 과거제도 개선을 위해 대과(大科)는 규장각을 통해 국왕이 직접 관장하여 많은 과폐를 없앴다. 전제(田制) 개혁에도 뜻을 두어 조선 초기의 직전법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규장각 제도를 일신하여 왕정 수행의 중심기구로 삼았다.



    순조 [純祖, 1790~1834]


    조선의 제23대 왕(재위 1800~1834). 김조순 및 외가 인물들의 권력 강화에 맞서 선왕의 여러 정책을 모범으로 국정을 주도하려고 노력하였다. 암행어사 파견,《만기요람》편찬, 국왕 친위부대 강화, 하급 친위 관료 육성 등의 방식으로 국정을 파악하고 국왕의 권한을 강화하려 했다.



    헌종 [憲宗, 1827~1849]


    천주교인의 적발 방법으로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적용하였다. 친정(親政) 이후에도 삼정(三政)의 문란과 국정의 혼란으로 민생고가 가중되었다.



    철종 [哲宗, 1831~1863]


    조선왕조 제 25대 왕(재위 1849~1863). 1844년 가족과 함께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1849년 궁중에 들어와 이듬해 헌종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1852년부터 친정을 시작했으나 정치에 어둡고 외척인 안동 김씨 일파의 전횡으로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했다.



    고종 [高宗, 1852~1919.1.21]


    조선 제26대 왕(재위 1863∼1907).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세력다툼 속에서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내정 간섭을 겪었다. 개화, 수구의 양파가 대립하였고, 병자수호조약, 한·미, 한·영수호조약 등이 이루어졌다.



    순종 [純宗, 1874~1926.4.25]


    조선의 제27대 왕(재위 1907~1910)이자 최후의 왕. 한일신협약을 체결했고, 이에 따라 일본인의 한국관리 임용을 허용하여 사실상 국내정치는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일본의 압력으로 한국군을 해산하였으며 12월에는 황태자가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혀갔고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설립을 허가했다.








    태조


    쟁쟁한 전처의 아들들을 냅두고 후처 소생의 어린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여


    1, 2차 왕자의 난이라는 참극을 불러옵니다.



    정종


    재위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이렇다할 치적도, 잘못도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정당한 왕위 계승자 임에도 불구하고 동생(태종)에게 눌려 빌빌거렸다는 점일까요...



    태종


    조선의 안정을 위해서라고는 하디만, 1,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동생과 개국공신들을 죽이고,


    심지어 친형제와도 칼을 겨누는 등 패륜적인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세종


    세종은 이상적인 군주의 표본입니다.


    역대 왕들은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세종대의 선례를 많이 따랐다고 합니다.


    다만 자신이 적자 소생이 아님에도 왕위에 오른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미래를 내다보지 않은 채 괄괄한 아드님들을 제쳐두고 몸이 약한 문종을 내세운 것이 옥에 티겠죠



    문종


    태종 세종을 거치며 잘 닦여온 왕권이, 허약한 문종으로 인해 점차 흔들리게 됩니다.


    수양대군(세조)를 경계한 탓인지 고명을 내릴 때에 수양을 제쳐둔 것이


    오히려 그의 성미를 건드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단종


    단종의 나이어림으로 인해 신권이 왕권을 넘어서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게 됩니다.


    일례로, 문종의 고명대신들이 정사를 다 처리한 후 미리 해 둔 표식에 도장만 꽝꽝 찍게 하는


    황표 정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세조


    누구나 다 알듯이 친조카를 죽이고 형수의 능을 파헤치는 등 태종과 비슷한 길을 걷습니다


    또 머리를 맞대고 거사를 도모한 한명회 등을 너무 떠받들어 그들의 부당한 행실을 눈감아주기도 합니다.



    예종


    예종은 일찍이 요절했습니다.


    당시 큰 사건이라하면 남이의 역모 사건 정도가 있는데


    예종의 질투심을 건드린 훈구 세력의 모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존 훈구 세력을 물리치고 신진 세력을 끌어들여 왕권 강화를 꾀하나


    젊은이답게 마음과 열정만 급했달까요, 결국 독살설에 휘말리고 마는 왕입니다.



    성종


    유명한 폐비 윤씨 사건의 장본인입니다.


    재위 초기 윗전 마마(정희, 인수대비 등)님들과 자신을 왕위에 앉힌 공헌자 신숙주, 한명회등에게


    휘둘림을 당하고 친정을 시작한 후에도 그들의 간섭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주색을 좋아하는 등 쾌락을 탐닉하는데에도 열심이었다 합니다.



    연산군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을 알게 된 충격이 비정상적으로 비뚤어짐에 따라


    수많은 인명이 목숨을 잃고 맙니다.


    이에는 자신의 이복동생들, 어머니격인 선왕의 후궁들, 그리고 할머니 인수대비까지 포함되어 있죠.


    그에게 눈엣가시인 사림들도 연산군 대 무더기로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대 왕인 태조가 있고, 2대 정종, 3대 태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관직제도를 개혁, 4대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 5대 문종, 6대 단종, 7대 세조,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단종의 왕위 찬탈, 8대 예종, 9대 성종은 경국 대전 완성, 10대 연산군, 11대 중종, 12대 인종, 13대 명종, 14대 선조, 15대 광해군은 대동법 실시, 16대 인조, 17대 효종, 18대 현종, 19대 숙종, 20대 경종, 21대 영조는 탕평책 실시, 균역법 시행, 22대 정조는 탕평책 계승, 인재 고루 등용, 23대 순조, 24대 헌종, 25대 철종, 26대 고종은 대한제국 제 1대 황제, 27대 순종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