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과거에 팽형이라는 형벌이 있었는데 실제 시행 사례가 있나요

turtle 2019. 11. 15.


과거 팽형이라고 삶아 죽이는 형벌이 있었는데 조선시대 팽형은 실제 시행이 아닌 명예형이었다고 하는데 다른나라나 한국 고대 기록에 실제 시행 사례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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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답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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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채
생산부 2019. 11. 15

실제 중국에서는 팽형에 사용되었다는 솥이 발굴된 적이 있다.
이시카와 고에몽이 기름끓는 가마솥에 던져져 팽형을 당했던 것을 보면 일본에서도 같은 형태로 존재했던 형벌인 듯하다.
현대에 들어서도 공식적인 처벌은 아니지만 사례가 있다(...) 2002년 우즈베키스탄의 무자파르 아바조프(Muzafar Avazov)는 2002년 종교적인 이유로 체포된 후 끓는 물에 담겨지는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 그의 사체의 머리 뒤에는 피투성이의 거대한 상처가 있었으며 손발톱은 모두 빠져 있었고 이마와 목은 멍들어 있었으며 온 몸에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구글에서 그의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면 사체 사진을 볼 수 있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선 안하는게 낫다.
뉴욕에는 팽살과 관련된 도시전설이 있다. 이탈리아 마피아와 중국 마피아가 한창 세를 다투던 시절, 어느 아침 차이나타운과 리틀 이탈리아의 경계에 거대한 솥이 놓여져 있었다고 한다. 열어보니 행방불명되었던 이탈리아 행동대원이 잘 삶겨진 채 들어 있었고... 대륙의 포스에 데꿀멍한 이탈리아 마피아가 중국 마피아에게 세를 넘겨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 조선의 팽형

그런데 이를 조선에서 수입(?)하면서 변형된 방식으로 변했는데, 주로 탐관오리들에게 이 형벌을 가했다고 한다.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팽형의 진행 과정과 연계하면 이것이 명예형임을 알 수 있다.


이는 KBS 스펀지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데, 이규태 선생의[2]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의 팽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죄인을 앉혀놓고 "팽형을 하겠다."고 선고한 후, 가마솥을 내 온다. 가마솥을 내오면 집행인들이 열심히 장작을 넣고 불을 피우는 을 하거나 딸랑 종이 한장 넣고 태운다. 그럼 죄인을 아무것도 없는 빈 가마솥에 넣은 후 뚜껑을 닫고 잠깐 기다린다. 이 때 죄인의 유가족들은 정말 상을 당한 것처럼 막 통곡해야 한다. 그리고 죄인을 가마솥에서 꺼내는데, 이 때부터 그 죄인은 두 눈 뜨고 멀쩡히 살아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죽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이 형벌이 집행된 시점에서 이미 걸어다니는 시체.
그래서 죄인의 유가족들은 죄인을 죽은 사람 취급하여 말도 붙일 수 없고, 장사도 치러야 하고 시묘살이도 해야 하며 매년 제사도 지내야 하고, 당연히 죄인도 고인으로 간주되어 사람 취급을 받을 수가 없으며 밖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며 낮에도 자기 집의 방 한칸에 갇히다시피 살면서 어떠한 편의 및 서비스도 받을 수가 없고, 평생 그렇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식사도 몰래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심지어 이러한 상황에서 부인과 정을 통하여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는 사생아가 된다. 조선 말기에는 몰래 돌아다니다가 놀림거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살아있으되 살아있지 않는 것과 같은 존재의 소멸.게다가 자신은 이미 심지어 자살한 사람은 나중에 무죄로 입증되면 신원이 회복되는 것과 달리 팽형을 택한 죄인은 죄가 없어져도 신원이 회복되지 않는다(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한마디로 목숨을 보존하는 대가로 명예가 영원히 죽어버린다.
아무리 그래도 중국 쪽에 비하면 꽤나 온건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중국의 방식대로 차라리 죄인을 진짜로 삶아 죽이면 죄인이 죽음으로써 죄인 입장에서는 더 이상 고통받거나 괴로워할 이유가 없고 단지 형이 집행될 때 잠깐동안 고통스러워 하고 죽으면 그걸로 끝이지만,조선의 팽형의 경우 형을 집행받고 집행자가 죽이는 하면서 집행이 끝나면 실제로는 살아있는데 사회적으로는 이미 죽은 사람으로 간주되니 당연히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있어도 고인취급을 받는다.자신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는 이미 죽은사람 취급하여 말도 붙이지 않는데다가 본인도 본인의 가족들이 관심도 안가져주고 사회에서도 사람취급도 안해주니 살아있는것 자체가 심리적 고문이나 다름없다. 어떠한 면에서는 차라리 죽이는 것 보다 더 잔인하다.
원래 조선은 유교주의적 입장에 따른 교화에 의한 통치를 중시하고 과도한 형벌을 금기시했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렇다고 인권이 확립되기 전의 전세계에서 다 그랬듯이 조선에서 잔인한 신체형이 행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과도한 형벌 금지가 없던 해외의 고문, 처형 방식에 비하면 조선은 굉장히 온건한 쪽이긴 하다.
죽이진 않아도 사회적으로 매장시킨다는 점에서 파문하고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조선의 팽형은 그야말로 살아도 살아있는데 아니게 되어버리니 보통 팽형을 하기 전 "자결과 팽형 중 어떤 걸 할 거냐?"고 물었는데, 그 질문을 던진다면 십중팔구 전자를 택했었다. 당시에는 체면을 중시하는 것도 있었고, 앞서 언급했듯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닐 정도로 정신적인 고통을 길게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팽형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형벌이 고종대까지 진행되어 일본인과 선교사의 기록에 남겨지기도 했다.
고대 중국에서 행해졌던 궁형도 이와 비슷하다. 당시 이 형벌을 받은 죄인은 궁형과 대벽(참수) 중 어떤 형을 받을지 선택할 수 있었다. 전자는 고자가 되고 생은 포기하지 않는 대신 명예가 영원히 죽어버리는 형벌이었고 후자는 생을 포기하는 대신 명예를 지킬 수 있는 형벌이었다. 즉, 궁형과 마찬가지로 팽형도 죄인에게 "생명과 명예 중 무엇을 포기할 거냐?"고 선택권을 주는 셈이다. 팽형은 죄인이 삶에 대한 애착으로 모든 명예를 포기함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퍼포먼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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