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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침팬지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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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부하는데 계유정난이 대해 궁금해요

조선시대를 공부하고 있는데 계유정난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혹시 아시는 전문가님 계시면 답변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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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453년 수양 대군(후에 세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되는 사건을 계유정난이라고합니다. 세종의 큰 아들 문종은 병약하여 단명하고 문종의 어린 아들 단종이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수양 대군은 김종서 등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동생인 안평 대군도 죽인 뒤 단종을 영월로 귀양 보낸 후 사약을 내려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사육신 등을 처형하고 정난에 공이 큰 한명회, 신숙주, 권람, 홍달손 등을 공신에 책봉하였으며 성리학적 명분론을 신봉하는 사림인 김종직은 조의제문(弔義帝文, 초나라 왕인 의제의 죽음을 슬퍼하는 글)을 지어 이 사건을 비난함으로써 무오사화가 일어났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계유정난은 1453년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기 위해 일으킨 사건을 말합니다.

      세종의 뒤를 이은 병약한 문종은 자신의 단명을 예견하고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 등에게 자기가 죽은 뒤 어린 왕세자가 등극했을 때 그를 잘 보필할 것을 부탁, 1452년 남지가 병으로 좌의정을 사직한 후 좌의정은 김종서, 우의정은 정분이 맡게 됩니다.

      수양대군은 1453년 문종의 유탁을 받은 삼공 중 지용을 겸비한 김종서의 집을 불시에 습격, 그와 그의 두 아들을 죽이고 이 사변 직후 수양대군은 김종서가 모반하였으므로 주륙하였는데 사변이 창졸간에 일어나 상계할 틈이 없었다고 사후에 상주하였고, 곧 이어 단종의 명이라고 속여 중신을 소집, 사전에 준비한 생살 계획에 따라 황보 인, 이조판서 조극관, 찬성 이양 등을 궐문에서 죽였으며 좌의정 정분과 조극관의 동생인 조수량 등을 귀양보냈다가 죽였으며, 수양대군의 친동생 안평대군이 황보인, 김종서 등과 한패가 되어 왕위를 빼앗으려 하였다고 거짓 상주해 강화도로 귀양 후 사사했습니다.

      수양대군은 10월10일 정변으로 반대파를 숙청 후 정권을 장악, 그는 의정부영사와 이조, 병조 판서, 내외병마도통사 등을 겸직했고 정인지를 좌의정, 한확을 우의정으로 삼으며 집현전으로 하여금 수양대군을 찬양하는 교서를 짓게 하는 등 그의 집권태세를 굳혔습니다.

      이 정변이 계유년에 일어나 계유정난이라 하며 이 사건에 공이 있다하여 수양대군, 정인지, 한확, 이사철, 박종우, 이계전, 박중손, 김효성, 권람, 홍달손, 최항, 한명회 등 37명은 정난공신이 됩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계유정난은 1453년 11월 10일 수양대군이 김종서,황봉인 등을 제거하고 반대파들을 숙청하여 정권을 장악한 정변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계유정난은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단종의 보좌세력이자 원로대신인 황보인 김동서 등 수십인을 살해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사건입니다. 13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단종은 수렴청정을 해 줄 대왕대비도없어서 문종의 고명을 받은 황보인과 김종서 등 대신들이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