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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키위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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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는 고려말때는 쌍성총관부가 있는땅을 다요구하다가 조선건국에는 조용해졌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명나라가 고려말때는 원나라의 쌍성총관부가 있는 땅까지 요구하는데요

그러다가 이후 조선건국시에는 이러한 발언이 조용해진 이유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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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소한토르키레우스91
    소소한토르키레우스91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의 철령위 설치 문제는 고려 말기에 발생한 것으로, 고려가 원나라로부터 돌려받은 철령 이북의 땅을 명이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반환을 요구한 사건입니다. 이에 대해 고려는 강하게 반발하였고, 결국 양국 간의 갈등은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조선은 명과의 외교관계를 중시하며, 조공을 바치는 대신 책봉을 받는 형식으로 외교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명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하였고, 조선은 이를 수용하면서도 자주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따라서 조선 건국 초기에는 명과의 갈등이 크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쌍성총관부는 원나라가 고려 동북부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함경도 화주 지역에 설치했던 통치기구입니다. 고려와 원나라의 전쟁 때에 설치되었다가 공민왕 때 폐지되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거론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나라에서 철령 이북의 땅을 요구한 이유는 고려의 자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진짜 고려와 싸우려는 의지는 없었다고 봅니다.


    명의 입장에서 원의 지배를 받던 고려를 쉽게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이 만주 지역의 여진과 결합해 명을 압박한다면 골치였겠죠. 그래서 내민 카드가 철령위 설치였습니다.


    고려는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영은 사신들이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정벌군을 꾸려 요동으로 출정시켰습니다. 그리고 위화도에서 고려군은 회군하였죠.


    이성계가 권력을 잡은 뒤부터 명은 더 이상 철령 이북이 명의 소유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일단은 고려의 태도가 친명임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