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은 건국 후 중국의 오월, 후당, 거란, 일본 등과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습니다. 친신라 정책을 추구하여 신라 지방관의 지위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고려와는 건국 이전에는 서남해안 일대에서 대립하였으나, 건국 이후에는 인질의 교환을 통하여 친선관계를 유지하기도 하였습니다
견훤은 나라를 세운 바로 그 해에 중국의 오월과 왜에 사신을 파견하며, 후삼국 중에서도 국제 외교에 가장 신경을 기울였습니다. 견훤은 오월에 사신을 보내고 책봉을 받았는데, 망해가던 당에게 책봉받았던 신라나(이후 생긴 후당은 좀 멀쩡하긴 했다.) 중국과의 조공-책봉 관계는 아오안이던 후고구려와 고려, 발해에 비해서 중국 내에서 정통성은 후백제 쪽이 더 높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오월국이 연호를 제정하고 독립국화했으면서도 오대 제국으로부터 책봉을 받았음을 생각하면, 견훤이 "내 등뒤에 중국 황제 있다"라는 말이 100% 거짓은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