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왜 오동나무를 딸을 낳으면 심었다가 시집갈 때 베었다고 했나요?
팔공산 동하사의 이름이 원래 유가사였다고 했는데 흥덕왕 7년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하여 동화사로 고쳤다고 하네요. 봉황이 이 나무에 잔다고 해서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만드는 데도 사용했다고 하는데 왜 오동나무를 딸을 낳으면 심고 시집갈 때 베었다고 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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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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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질문자님께서 는 오동나무에 대해서 너무 잘 아십니다.
송창식의 노래중에도 기타에 대하여 노래한것이 오동나무 입니다.
오동나무는 가볍고 결도 좋고 잘큽니다.
딸을낳아 심어서 시집갈때 나무를 베어서 혼수품으로 옷장이나 가구를 만들어 가기위해 심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지금도 마찬 가지지만 결혼을 할 떄 보통 여자들이 가구를 장만 하지요. 오동 나무를 키워 여자아이가 시집을 갈 때쯤에는 장농같은 것을 만들어 가지고 가라고 오동 나무를 심었던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