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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한그늘나비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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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동나무를 딸을 낳으면 심었다가 시집갈 때 베었다고 했나요?

팔공산 동하사의 이름이 원래 유가사였다고 했는데 흥덕왕 7년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하여 동화사로 고쳤다고 하네요. 봉황이 이 나무에 잔다고 해서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만드는 데도 사용했다고 하는데 왜 오동나무를 딸을 낳으면 심고 시집갈 때 베었다고 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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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금킹 시계퀸
    순금킹 시계퀸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질문자님께서 는 오동나무에 대해서 너무 잘 아십니다.

    송창식의 노래중에도 기타에 대하여 노래한것이 오동나무 입니다.

    오동나무는 가볍고 결도 좋고 잘큽니다.

    딸을낳아 심어서 시집갈때 나무를 베어서 혼수품으로 옷장이나 가구를 만들어 가기위해 심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지금도 마찬 가지지만 결혼을 할 떄 보통 여자들이 가구를 장만 하지요. 오동 나무를 키워 여자아이가 시집을 갈 때쯤에는 장농같은 것을 만들어 가지고 가라고 오동 나무를 심었던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