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드 미르자는 어떤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아부 사이드 미르자(Abu Sa'id Mirza)는 어떤 인물인가요? 아부 사이드 미르자의 생애는 어떠했나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티무르 왕조의 제7대 술탄. 트랜스옥시아나와 호라산으로 양분되어있던 티무르 제국을 통합하고 영토를 확장하였다. 관개사업, 세제개혁 등 제국의 경제적 발전을 위한 여러 정책을 시행하였다.
티무르의 3남 미란 샤(Miran Shah, 1366-1408)의 손자이자, 미란 샤의 3남 무함마드 미르자(Muhammad Mirza)의 아들이며, 무굴 제국(Mughal Empire)을 세운 바부르(Babur, 재위 1526~1530)의 조부이다.
1424년 헤라트에서 태어났고, 아버지 무함마드 미르자와 숙부 울루그베그(Ulūgh Beg, 재위 1447-1449)의 지원 속에서 성장하였다. 제5대 술탄 압둘라티프 미르자(Abdal-Latif Mirza, 재위 1449-1450)의 반란 당시 제국의 혼란을 기회로 하여 부하라와 사마르칸트를 차지하고자 1449년에 군대를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1450년에 야시(Yasi, 현재의 투르키스탄) 전역을 점령하였고, 1451년 6월 우즈베크족 아불 카이르 칸(Abu'l-Khayr Khan, 1412-1468)과 협력하여 사마르칸트까지 차지하면서 트랜스옥시아나의 지배권을 획득하고 제위에 올랐다.
1454년 호라산의 아불 카심 바부르 미르자(Abul-Qasim Babur Mirza, 재위 1449-1457)와 충돌하였으나, 협상을 통하여 아무다리야강을 영토 경계임을 합의하였다. 1457년 아불 카심이 사망한 뒤 호라산을 다시 공격하였고 1459년 3월 샤라크 전투(Battle of Sarakhs)에서 이브라힘 미르자(Ibrahim Mirza, 재위 1457-1459)에 승리한 뒤 트랜스옥시아나와 호라산으로 양분되었던 티무르 제국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1461년 흑양왕조(Kara Koyunlu Dynasty)의 영토와 접한 현재의 이란 동부까지 제국의 영토를 회복하였다. 1467년 백양왕조(Ak Koyunlu)의 위협을 받은 흑양왕조의 하산 알리(Hasan Ali, 재위 1467-1468)가 아부 사이드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아부 사이드는 흑양왕조를 지원하기 위해 동북부로 진군하였고, 백양왕조의 본거지인 카라바흐에 주둔하던 중 우준 하산(Uzun Hasan, 재위 1453-1478)에게 보급로를 차단당해 퇴각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1469년 2월 11일 우준 하산의 군대에 사로잡혔고, 헤라트의 영주 야드가르 무함마드(Yadgar Muhammad Mirza)에게 넘겨져 1469년 2월 17일에 처형당했다.
아부 사이드는 재위 기간 중 티무르 제국의 영토를 복원하고자 노력하였고, 정략혼을 통해 여러 부족들을 통합했다. 그 결과 39명의 아내를 맞이하여, 슬하에 10남 11녀를 두었다. 또한 계획적으로 관개 수로와 댐을 건설하고, 성벽과 대형 건축물을 세웠으며, 이슬람 조세 제도를 도입하는 등 티무르 제국의 경제 부흥에 기여하였다. 종교적으로는 낙쉬반디야 수피 종단의 가르침을 따랐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부 사이드 미르자 [Abu Sa'id Mirza]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부 사이드 무함마드 미란샤 티무르 는 지금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이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했던 티무르 왕조의 일원이자 지배자였다. 아부 사이드는 티무르의 증손자이자, 미란 샤의 손자이자 울루그 베그의 조카이다. 그는 인도에 무굴 제국을 세운 바부르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출처: 위키백과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티무르 3남 미란 샤의 손자이자 미란 샤의 3남 무함마드 미르자의 아들이며 무굴 제국을 세운 바부르 의 조부 입니다.
1424년 헤라트에서 태어났고 아버지 무함마드 미르자와 숙부 울루그베그의 지원속에 성장했으며 제 5대 술탄 압둘라티프 미르자의 반란 당시 제국의 혼란을 기회로 해 부하라와 사마르칸트를 차지하고자 1449년 군대를 일으키나 실패했고 1450년 야시전역을 점령, 1451년 6월 우즈베크족 아불 카이르 칸과 협력해 사마르칸트까지 차지하면서 트랜스옥시아나의 지배권을 획득하며 제위에 올랐습니다.
1454년 호라산의 아불 카심 바부르 미르자와 충돌하나 협상을 통해 아무다리야강을 영토 경계임을 합의, 1457년 아불 카심이 사망한 뒤 호라산을 다시 공격했고 1459년 3월 샤라크 전투에서 이브라힘 미르자에 승리한 뒤 트랜스옥시아라와 호라산으로 양분되었던 티무르 제국을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1462년 흑양왕조의 영토와 접한 현재의 이란 동부까지 제국의 영토를 회복했으며 1467년 백양왕조의 위협을 받은 흑양왕조의 하산 알리가 아부 사이드에게 지원을 요청, 아부 사이드는 흑양왕조를 지원하기 위해 동북부로 진군하였고 백양왕조의 본거지인 카라바흐에 주둔하던 중 우준 하산에게 보급로를 차단당해 퇴각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1469년 2월 11일 우준 하산의 군대에 사로잡혔고 헤라트의 영주 야드가르 무함마드에게 넘겨져 1469년 2월 17일 처형당했습니다.
아부 사이드 재위기간 중 티무르 제국의 영토를 복원하고자 노력했고 정략혼을 통해 여러 부족들을 통합한 결과 39명의 아내를 맞이하여 슬하에 10남 11녀를 두었고 계획적으로 관개 수로와 댐을 건설하고 성벽과 대형 건축물을 세웠으며 이슬람 조세 제도를 도입하는 등 티무르 제국의 경제 부흥에 기여했으며 종교적으로 낙쉬반디야 수피 종단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