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의 최측근 이춘부라는 인물은 어떤 인물인가요?
고려시대 공민왕은 신돈이라는 승려와 그의 심복 이춘부를 믿어 사실상 국가운영 전반을 함께했는데요.
권문세족을 타파하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잘하다가 음모에 휩쓸려 신돈과 함께 살해당한 이춘부라는 인물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춘부는 충정왕 때부터 공민왕 때까지 관직에 있었던 문신입니다. 특히 공민왕 재위 당시 수상직에 해당하는 도첨의시중을 지낸 인물입니다.
두차례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고, 홍건적 침입시 공민왕을 모시고 안동으로 호종하였습니다. 그는 신돈의 지지 세력으로 활동하였으며, 신돈은 왕을 위로하기 위해 이인임과 유탁엑 맡겼다면 정치는 이춘부를 통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돈의 실각과 함께 가문이 몰락하고, 그도 처형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민왕의 신복 이춘부가 누구인지 궁금하군요.
이춘부는 고려 후기 공민왕 때 도첨의시중을 역임한 문신입니다. 충정왕 때 우대언·밀직부사 등을 지내고, 공민왕 때에는 지추밀원사·판추밀원사·도첨의찬성사 등을 거쳐, 1368년(공민왕 17) 수상직인 도첨의시중에 올랐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였으며, 홍건적 침입 때는 안동으로 피란하는 왕을 호종하고 군사를 징발하여 전투를 지휘하였습니다. 신돈 집권기에 그 지지 세력으로 활동하다가 신돈 실각과 함께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춘부는 공민왕 때 동강도 병마사로 왜구를 격퇴했으며 전라도 도순검 겸 병마사로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 1등공신이 되었습니다. 동덕찬화공신에 책록되고, 도첨의시중이 되었으나 신돈 일당으로서 횡포를 자행한 죄로 처형됐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368년(공민왕 17년) 12월 공민왕은 우시중에 이춘부 좌시중에 이인임을 두어 2인 수상 체제를 갖췄습니다. 조정의 두 수상이 모두 신돈과 가까운 인물들로 채워지자 바야흐로 신돈 정권은 절정을 맞게 됩니다. 그런데 1369년 사심관 제도의 복설을 둘러싸고 공민왕과 신돈 사이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갈등 상황에서도 신돈은 5도 사심관 제도를 밀어붙인 것은 잦은 암살 시도를 겪으며 중앙 정계를 장악하는데 한계를 느껴 지방과 연계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건히 하고자 한 것입니다.그러나 공민왕은 사심관 제도의 복설을 단박에 거절해버립니다. 또 대륙의 정치적 변화는 신돈에게는 악재로 다가오게 되는데 결국 돌파구로 서경 천도설을 이춘부를 통해 강력 건의하기에 이릅니다. 여러 곳 중에 충주로 낙점하였지만 공민왕은 삼소 평양 금강산 충주에 아성을 짓는 것으로 하고 삼소 등을 순행했지만 천도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돈의 무리수로 공민왕은 신돈 이춘부 등을 척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