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제작된 화차는 실전에 배치되었나요?
조선 전기에 개발된 화차, 신기전 등이 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다룬 사극에서는 등장하지가 않는데,
화차가 실전에 배치되어 활용된 적이 있나요?
조선 전기에 개발된 화차, 신기전 등이 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다룬 사극에서는 등장하지가 않는데,
화차가 실전에 배치되어 활용된 적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초기에는 실용성이 떨어져 실전에 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임진왜란 시기에 이르러 화차의 진가가 발휘된느데 신기전을 발사하기 위한 화차가 개발, 이 때의 화차를 특별히 신기전기라 하며 화차는 화기 용도외에 군사 물품을 옮기는 수레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권율은 변이중이 만든 화차 300량을 지원받았고, 그 화차들은 행주대첩에서 비격진천뢰와 함께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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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화차는 실제 전쟁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최무선의 아들인 최해산(1380 ~ 1443)도 화차를 개발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최해산 화차에 대해 “철령전(鐵翎箭) 수십 발을 여러 동통(銅桶)에 넣어 작은 수레에 싣고 화약으로 발사하면 맹렬하여 적을 제어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동통은 구리로 만든 총통을 의미하고, 철령전은 총통에서 발사하는 중ㆍ대형 화살을 의미하므로 최해산 화차는 총통 여러 발을 탑재하는 화차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1592년 2월 행주산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조선군은 변이중 화차 40대를 운용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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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화차는 여러 번 개발이 되었는데 특히 임진왜란 중인 1592년(선조 25) 변이중이 문종 화차를 개량하여 만든 것으로, 수레 위에 40개의 승자총(勝字銃)으로 총통기를 설치하고 총의 심지를 이어서 차례로 쏘게 한 것입니다. 이 변이중의 화차는 박진(朴晉)이 경주탈환전(慶州奪還戰)에서, 권율(權慄)이 행주산성 전투에서 각각 사용하여 큰 전과를 세웠고, 수군이 군함에 설치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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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있습니다. 실제로 화차란 이름은 고려시대 부터 등장하긴 합니다. 말씀하신 조선시대에 개발된 화차도 개량되어 몇종류가 있으나 최초로 실전 배치된 것은 성종 9년 8월 10일(기해) 3번째기사에서는 홍귀달에게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을 물어보는데서 화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시애의 반군이 화차를 보자마자 도망쳤다고 하고 있으며, 성종 23년 5월 25일(갑오) 2번째기사에서도 이극균이 “본도(本道)에서는 철(鐵)이 생산되지 않으므로, 화차(火車)가 겨우 4백여 대뿐입니다. 만약 제진(諸鎭)에다가 각각 1백 대씩 설치한다면 어찌 유익(有益)함이 없겠습니까? 화차가 한 번 출동하면 적(賊)이 모두 피해서 도망하니, 그것을 믿고서 적을 방어하고자 할 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방법으로 견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라고 주장해 화차가 실전배치되어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깊이있는 질문 감사드리며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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