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링컨대통령을 암살한 배경은 무엇인가요?
미국 대통령 링컨은 노예해방등 훌륭한 일들은 많이 하였는데요. 그런 그가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미국 링컨대통령을 암살한 배경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링컨에 대한 분노를 가진 사람의 소행인 것으로 보입니다.
존 윌크스 부스는 남부 출신의 인기 배우였고 링컨에게 극렬한 분노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당초 부스의 목표는 링컨을 납치해 남군 포로와 맞교환하는 것이었습니다. 1865년 3월 4일에 열린 링컨 대통령의 제2기 취임식에 부스는 애인 루스 헤일의 도움으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후에 부스는 "이 날에 링컨을 죽일 수도 있었다."라고 말했습니. 링컨은 인기 배우인 부스를 뒤풀이 파티에 초청하기도 했지만 부스는 "링컨하고 같이 식사하느니 돼지랑 식사하는게 낫다."라면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4월 10일,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 장군이 북군에 항복하면서 사실상 남북전쟁은 끝났습니다. 링컨을 납치해 남군 포로를 구해내고 남군의 위기를 해소하겠다던 부스의 계획도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링컨 대통령은 연설에서 흑인의 참정권을 보장할 생각이 있다는 발언을 했고 부스는 이를 듣고 링컨과 몇몇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존 윌크스 부스는 남부 출신의 인기배우였고 링컨에게 극렬한 분노를 가진 사람으로 당초 부스의 목표는 링컨을 납치해 남군 포로와 맞교환 하는 것이었습니다. 1865년 3월 4일에 열린 링컨 대통령의 제 2기 취임식에 부스는 애인 루스 헤일의 도움으로 참석했고 후 부스는 '이 날에 링컨을 죽일수도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링컨은 인기 배우인 부스를 뒤풀이 파티에 초청하기도 했지만 부스는 '링컨하고 같이 식사하느니 돼지랑 식사하는게 낫다'라면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후 3월 17일 부스는 링컨 대통령이 캠벨 미합중국 육군병원에서 연극 공연을 볼 예정이란 정보를 입수하고 워싱턴 털학에 있던 식당에 있다가 돌아오는 링컨을 납치하려하나 링컨은 공연관람을 하지 않고 내셔널 호텔에서 육군 140 인디애나 연대가 탈취한 남군 군기의 송정식에 참여해 부스의 납치시도는 실패합니다.
4월 10일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 장군이 북군에 항복하면서 사실상 남북전쟁은 끝났으며 링컨을 납치해 남군 포로를 구해내고 남군의 위기를 해소하겠다던 부스의 계획도 허사가 되는 가운데 링컨 대통령은 연설에서 흑인의 참정권을 보장할 생각이 있다는 발언을 했고 부스는 이를 듣고 링컨과 몇몇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4월 14일 부스는 조지 아트제로트와 데이비드 헤롤드 등 몇몇 공모자들과 모여 링컨이 포드 극장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날 링컨 대통령, 부통령 존슨, 국무장관 윌리엄 슈어드,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 등을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부통령 존슨에 대한 암살은 암살자 조지 아트제로트가 긴장과 두려움에 술을 마셨다가 취해 암살도구를 잃어버려 실패, 이후 조지 아트제로트는 붙잡혀 교수형 당합니다.
국무장관 윌리엄 H. 수어드는 9일 전인 4월 5일 마차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어 깁스를 했고 암살자 데이비드 헤롤드는 링컨 암살과 비슷한 시간대에 슈어드의 자택에 의사인 척 들어가 칼로 살해하려 하나 슈어드의 아들에게 들켜 저지받고, 그걸 뚫고 슈어드를 찔렀지만 슈어드가 부상때문에 착용한 턱 보호대로 뺨에 상처만 입힌 채 실패, 이후 헤롤드는 도주 중 투항하고 이후 교수형 당합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부 연합이 애퍼매턱스에서 항복한 지 5일 후, 북부의 승리를 이끌어낸 장본인인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했다. 암살 전 그는 며칠 밤에 걸쳐 백악관에 수의에 덮인 시체가 놓여 있고 대통령이 죽었다는 말을 전해 듣는 악몽을 꾸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꿈을 떨쳐 버렸고 뒤에 아내인 메리에게 "앞으로는 우리 둘 다 좀더 명랑해져야 하오" 라고 말했다. 성(聖) 금요일 저녁, 두 부부는 포드 극장에서 「미국인 사촌」이라는 희극 공연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메리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링컨은 한바탕 웃을 필요가 있다며 아내를 설득했다.
그러는 동안 광신적인 남부 지지자인 배우 존 윌크스 부스는 대통령과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살해할 음모를 짜고 있었다. 링컨 부부가 극장에 도착하자 관중의 기립하여 「대통령에게 만세를」을 부르며 환호했다. 그들은 특등석에 자리를 잡았으나, 경호원은 공연을 보기 위해 슬쩍 빠져나갔다. 부스는 특등석으로 몰래 다가가 안으로 들어갔고, 링컨의 머리에 단 한 발을 쏘았다. 그리고 무대로 뛰어내리더니 버지니아 주의 표어 "폭군의 말로는 언제나 이런 것이다!(Sic semper tyrannis)"를 외치고 극장에서 달아났다.
의식을 잃은 대통령은 길 건너편의 하숙집으로 옮겨졌다. 그는 다시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몇 시간 뒤인 4월 15일 오전 7시 22분에 죽었다. 북부에서는 엄청난 애도와 복수에 찬 분노가 쏟아져 나왔다. 부스는 즉각 추격당했고 체포에 저항하던 중 총에 맞았다. 그의 공모자들도 대부분 붙들려 교수형에 처해졌다. 부통령인 테네시 주의 앤드루 존슨이 링컨의 뒤를 이었다. 링컨의 죽음과 함께 북부와 남부, 흑인과 백인 사이의 화해를 이룩하려는 미국의 가장 큰 희망도 사라졌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몇 년의 삶을 살았는지가 아니다. 그 세월 동안의 삶이 어떠했느냐다."
링컨 대통령이 했다고 전해지는 말
출처 :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Days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존 윌크스 부스는 남부 출신의 인기 배우였고 링컨에게 극렬한 분노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당초 부스의 목표는 링컨을 납치해 남군 포로와 맞교환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1865년 3월 4일에 열린 링컨 대통령의 제2기 취임식에 부스는 애인 루스 헤일의 도움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후에 부스는 "이 날에 링컨을 죽일 수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링컨은 인기 배우인 부스를 뒤풀이 파티에 초청하기도 했지만 부스는 "링컨하고 같이 식사하느니 돼지랑 식사하는게 낫다."라면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포드 극장에서 아내와 (Our American Cousin)의 공연 중에 존 윌크스 부스에 의해 저격을 당했고 링컨은 다음날 아침, 1865년 4월15일 토요일 오전 7시 22분에 윌리엄 피터슨(William Petersen) 집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워싱턴 D.C.의 포드 극장에서 1865년 4월 14일 암살 당했습니다. 링컨은 남북 전쟁 동안 노예 제도 종식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대통령입니다. 암살 배후의 주요 공모자는 존 윌크스 부스인데, 이 사람은 남부 동맹의 대의를 살리는 것을 선호했고 노예 제도 유지를 원했습니다. 결국, 이 사람은 연방군에게 포위됐는데 항복을 거부하고 총격전을 벌이다가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