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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04.21

헌종이 사망한 후 왜 철종이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나요?

헌종이 사망한 당시에 흥선대원군 이하응도 왕위 후보자 중 한명이었다고 하는데

왜 아무것도 모르는 강화도령이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나요?

이하응이 능력이 좋았다고 하는데 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왕위에 옹립한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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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순원왕후는 영조의 유일한 혈맥인 철종을 후사로 결정하여 자신과 순조의 아들로 삼고, 헌종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였습니다. 철종은 왕자로서 군호가 없었음은 물론이거니와 19세였음에도 관례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창덕궁 희정당에서 덕완군(德完君)의 군호를 받고 관례를 치른 후 즉위할 수 있었습니다.철종의 즉위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철종의 선대가 죄인으로 처벌을 받은 것이며, 다른 하나는 철종은 숙부이면서도 자기보다도 항렬이 낮은 조카 헌종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까지 무리수를 두면서도 찰종을 왕으로 삼은 이유는 순원 왕후가 직접 대리 청정을 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었을 것 입니다. 대원군 이하응 보다는 정치적으로아무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철종이 더 쉽게 조정 가능 했던 것으로 추정 됩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철종은 헌종의 대통을 이어 즉위 했지요.

    항렬로는 헌종의 숙부 였습니다. 당시 헌종은 후사를 두지 못하였고, 아들 항렬의 인물은 물론 항렬 종실 인물을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종은 순조와 순원왕후의 양자가 되어 즉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하응 흥선대원군이 왕위를 이어받지 못하고 철종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옹립한 그 이유는

    이하응 혈통으로 보면 인조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8대 손으로 왕권과 그다지 가까운 왕정은 아니 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남연군이 정조의 이복형제인 은신같이 양자로 들어감으로써 영조 부터 이어지는 왕가의 가계에 편입이 되어 왕위와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나 당시 안동 김씨의 세도가이지 상황에서 왕위와 멀지 않은 왕족이라면 것은 그다지 축복은 아니었지요.

    헌종 이후 끊어진 정조의 직계는 정조의 이복동생 응원군이 손자인 철종으로 이어졌고, 철종마저도 후사가 없는 상태에서 그나마 왕위에 가까운 왕족들은 모두 왕이 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안동김씨들로 부터 끊임없이 견제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안동김씨들은 조금이라도 왕이 재목으로 보이는 왕족들을 끊임없이 견제했고, 견제는 역모하는 무서운 누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조금만 왕의 자질이 있어 보이는 왕족은 꾸미지도 않은 역모의 혐의를 쓰고 멀리 귀양가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혈통적으로 왕의 자리와 멀지만 편입된 가계상 왕권과 제법 가까운 자리에 있던 이하응이 택한 목숨을 부지하는 방법은 건달처럼 행세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조대비는 순원왕후 사망 이후 궁중의 최고 어른이 되어 안동김씨에게 친정의 원한을 갚을 길을 찾고 있었는데요. 이하은은 조대비의 조카 조성하와 친교를 맺어 조대비에게 접근 하였고,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을 경우 자신의 둘째 아들 명복을 철종의 왕위계승자로 지명하도록 설득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사실상 세도가문이 권력을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강화도령을 '꼭두각시 왕'으로 세우고자 한 것이 바로 철종의 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왕이 무능하고 똑똑하지 않아야 소위 자기들이 권력을 더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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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94년 헌종이 후사를 두지 못한 가운데 재위 15년만에 승하하자 대왕대비 순원왕후는 철종을 즉위시킵니다.

    순원왕후는 영조의 유일한 혈맥인 철종을 후사로 결정해 자신과 순조의 아들로 삼고 헌종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하도록했는데 철종은 왕자로서 군호가 없었고 19세였음에도 관례도 치르지 않아 창덕궁 희정당에서 덕완군의 군호를 받고 관례를 치른 후 즉위할수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