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의 명분은 무엇이였을까요?
각 시대별로 시대정신이라는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조선이 개방되어 선진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 악영향을 강조하는 것은 많이 보았는데 당 시 이런 쇄국정책으로 조선에 과연 악영향만 있었는지 전문가님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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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
결과론적으로 볼때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인해 유럽의 선진 문명을 늦게 받아들여 결국 일본에 뒤쳐져서 일제시대까지 겪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럽의 외교는 일명 함포외교라고 해서 무력으로 상대 국가에게 불공정한 무역 계약을 강요하는 식이었습니다. 게다가 독일 상일 오베르트가 대원군의 부친인 남원군의 묘를 도굴하는 사건등도 벌어져서 유럽세력에 대한 반감이 더욱 높아져 있었기에 서양 오랑캐는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습니다.
굳이 긍정적인 의미를 찾자면 서양 세력에 맞서서 자주와 주체성을 가진 국가로서의 위신을 보였다는 것 말고는 딱히 의미를 찾기 힘들 것 같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서양 열강의 침략을 막기 위해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추진합니다. 통상을 요구하다 거부당한 열강들이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병인양요, 그리고 1868년 오페르트 도굴 사건을 경험하면서 더욱 서양에 대한 거부감이 증가하였습니다.
따라서 1871년 신민양요 이후 전국 곳곳에 척화비를 세워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표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