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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

튀르키예에서 일본을 왜 형제의 국가라고 부르는건가요?

튀르키예에서 일본도 형제의 국가라고 하더라구요.

일본은 좀 의외인데요.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일본을 형제의 국가라고 부르는 건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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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문분야전문가(화학/미술등)
    학문분야전문가(화학/미술등)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90년 오스만 제국은 일본에 656명의 사절단과 해군들을 보냈고, 일본의 정치인들 및 황실과 교류를 하며 환대를 받았고, 그 당시 오스만의 선함이었던 에르투으룰호를 타고 귀로하던 중 조난을 당했는데, 조난지의 근처 마을 주민들이 부상자들을 치료해주거나 사망자에게는 장례식을 치러주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유족들을 찾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것이 튀르키예와 일본이 형제국가로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에도 215명의 일본인들이 이란에 있었는데 튀르키예가 일본을 돕겠다고 하였으며, 이는 에르투으룰호 조난 사건 당시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던 일본에 대한 보답이라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터키 항공을 통해 무사히 215명의 일본인들과 5백여 명의 튀르키예인들을 구하였습니다. 이 두 미담을 통해 서로 형제 국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이 개항하면서 서구 열강들이 일본과 수교를 맺기 시작하며 오스만 제국 역시 일본을 예의주시합니다.

    오스만제국은 서구 열강들과 러시아를 견제할 우군, 상품을 팔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에 주목하고 튀르키예와 일본의 첫 접촉은 1873년 이와쿠라 도모미가 이끄는 이와쿠라 사절단이 유럽을 방문했을때 이와쿠라 사절단에 속해있던 후쿠치 오우치와 정토진종 승려 시마지 모쿠라이가 오스만 제국을 공식 방문한 것이 시작입니다.

    이후 1876년 일본 외교관 나카이 히로시가 이스탄불을 방문, 1878년 일본 해군의 세이키 호가 이스탄불을 공식 방문함에 따라 오스만 제국과 일본은 무역 협정 체결을 추진, 그러나 일본은 타 유럽 열강들과 달리 오스만 제국에는 일본이 불리한 불평등 조약 대신 오스만 제국과 동등한 특권을 요구함에 따라 협상은 난항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술탄 압뒬하미트 2세와 메이지 덴노는 우호 서신과 선물을 주고 받았으며 1887년 일본 황실의 고마츠노미야 아키히토 친왕 부부가 이스탄불을 방문해 1878년 압뒬하미트 2세가 일본 해군 장병들에게 수여한 훈장의 답례로 압뒬하미트 2세에게 훈장을 수여하자 오스만 제국은 일본에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결정, 1890년 6월 7일 600여명의 오스만 제국 사절단과 해군 장병들이 탄 대형 군함 에르투으룰호가 요코하마항에 도착합니다.

    오스만 제국 사절단은 메이지 덴노를 알현해 훈장을 수여, 일본 정계 인사들 및 황실과 교류하며 상당한 환대를 받게 됩니다

    3개월간 일본에 머물던 에르투으룰호가 귀로하던 길에 폭풍을 만나 와카야마현 근해에서 침몰하자 조난지 근처 마을 주민들은 의료진이 도착할때까지 비축했던 비상 식량까지 써가며 부상자들을 보살피고 장례를 치뤄줍니다.

    일본에서 해군 구조에 크게 기여하여 현지에 위령비가 세워진 것을 비롯해 일본에서는 유족들을 돕기 위한 성금 모금 운동이 진행, 부상자들은 일본의 공고, 히에이 두 군함으로 이스탄불로 귀한했으며 이로 인해 일본과 형제 국가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과 튀르키예는 19세기 말에 관계를 맺었다고 합니다. 대체로 일본과 튀르키예는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관계가 매우 좋은 편이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관계가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라서 형제의 국가라고 하는 것은 약간 과장된 표현 입니다. 튀르키에는 대한 민국과 형제의 국가이지 일본과는 아닙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적으로 일본과 튀르키예 사이에 중요한 교류가 있었네요, 그 중에 중요한 두번의 계기가 있었는데, 1890년 오스만의 사절단이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가다가 폭풍을 만나 와카야마현 근해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때에 일본이 그들을 도와 주었습니다. 사망한 이들을 위해 위령비를 세워주고 유족들을 돕기 위한 성금 모금 운동까지 전개하였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오스만제국과 일본간의 우호적인 감정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두번째 사건은 1985년 이란 이라크 전쟁 당시 사담 후세인은 이란 상공에서 운항하는 항공기들을 적으로 간주, 무차별 공격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에 이란에 있던 외국인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졌는데 이란을 탈출할 항공편이 없던 이란 주재 일본인 215명이 테헤란 공항에 고립되었습니다. 타국 항공사들은 자국민을 수송하기에도 빠듯했고 JAL은 자사 승무원의 안전을 이유로 운항을 거부하였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튀르키예가 일본을 돕겠다고 나섰던 것입니다. 튀르키예는 95년 전 조난 당시의 은혜를 갚겠다며 일본인 구출을 위해 특별기를 테헤란으로 보냈고, 그 덕분에 일본인 215명이 탄 터키항공 여객기 두대는 격추 발효 시점 15분 전 공항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500여명의 튀르키예인들도 있었는데 튀르키예 항공이 자국민들보다 먼저 일본인들을 먼저 태웠음에도 불구하고 에르투으룰호 조난 사건 당시의 미담을 잘 알고 있던 튀르키예인들은 이 결정을 비난하지 않고 군말없이 육로를 통해 이란을 탈출했습니다.

    이런한 일들로 일본과 튀르키예는 형제국으로 서로를 생각한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터키가 일본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터키는, 옛날에는 강력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건국하여, 한때는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할 정도로 대단한 나라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지금의 중동, 북아프리카, 동유럽 지역을 모두 차지할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오스만 제국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유럽 열강들의 표적이 되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의 숙적이었습니다.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의 북동쪽에서 터키에 계속 전쟁을 걸어, 터키 땅을 차지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