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625전쟁 당시 UN군 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는 왜 상륙지점을 인천으로 정했나요?
625전쟁의 잔황을 뒤바꾼 인천 상륙 작전시에 인천 이외에 후보에 올랐던 항구는 어디가 있었나요?
당시 사령관이던 맥아더가 인천을 강력히 주장했다고 하는데 인천을 반대했던 사람들의 주장은 무엇이었고 맥아더는 어떤 이유를 들어 인천을 밀어붙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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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미국은 인천 외에도 전북 군산, 강원 주문진 등을 상륙 장소로 검토했습니다. 그 장소들은 모두 38선 이남의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인천을 상류지점으로 맥아더 장군이 선택하자, 미합동참모본부와 해군 및 해병대 측은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인천의 자연적 조건이 대규모 상륙작전을 하기엔 부적절했기 때문이었죠. 인천항의 간만의 차가 평균 7 미터 정도로 항구에 상륙하기 부적절한 데다가 선단 접안지역이 좁아 상륙 후 시가전이 불가피한 점 등의 이유로, 완강히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은 적의 의표를 찌르는 기습효과를 위해인천 상륙 작전을 강행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여러 사람이 반대하는 바로 그 이유로 인천이 기습의 요충지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즉,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도 어렵다고 생각할 것으로 생각했고, 그러한 이유로 인천의 방어태세는 비교적 허술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이런 난점이 적의 허점을 찌르는 기습이 될 수 있다며 주장하였고,8월 28일 결국은 미국 합동참모본부로 부터의 승인을 받아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