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명나라의 외교관계 질문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봤을때, 조선과 명나라 사이의 외교관계는 조선에 득이었나요 실이었나요?
답변자님의 개인적 의견이 아닌, 역사학계의 정립된 정설이 있다면 그게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명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질서를유지하며, 일본과 여진 등의 주변 나라와는 교린 정책을펼쳤습니다. 이를 통해 주변국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고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으니 득도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애초에 외교관계는 득과 실이 모두 있기에 정확하게 딱집어서 판명할수는 없습니다.
득이였는지 실이였는지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각기 다르고요
딱 객관적인 설명만 드리자면
조선은 명나라와의 관계로 거대한 국가인 명나라의 앞선 문물들을 다수 들여왔으며, 조선의 사회적 문화적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명나라와의 외교로 정치적 기틀이 잡히기도 하였죠
하지만 명나라에 대한 사대정책으로 인해 조선은 많은 재산이 소모되기도 하였으며 이로인해 경제적인 피해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명나라의 신하국가와 마찬가지기에 명나라의 정치적 영향을 무시할수도 없었고요
인접한 거대국가였기에 외교관계는 결국 있을수밖에 없었고
이 외교가 득이였는지 실이였는지를 하나만을 정설로써 정립하는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될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주원장이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전통적인 한족이 세원 국가인 명나라를 세우면서 철령 이북 땅을 요구하거나 군신관계로 더 많은 조공을 요구하자 고려 우왕과 최영 장군은 오히려 요동정벌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대장군으로 전쟁에 나선 이성계는 4불가론을 내세우며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결국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은 명나라가 정통성을 갖춘 나라였기 때문에 친명사상을 펼쳤습니다. 친명배금 사상으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맞게 되어 전국토가 유린되고 20여만명의 포로들이 청나라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당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