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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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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유자광은 어떻게 문과 과거 시험을 본건가요?

당시에 얼자는 과거시험을 못보게 되어 있었는데 유자광은 어떻게 문과 과거시험을 볼 수 있었던 건가요?

조선에서 신분의 한계를 어떻게 뛰어 넘었던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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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자광(柳子光, 세종 21〔1439〕∼중종 7〔1512〕)은 한국사에서 매우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 명성은 물론 오명이다. 널리 받아들여지고 오래도록 이어지는 어떤 이미지는 억지로 꾸며내거나 무턱대고 주입한다고 해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거기에는 상당한 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지는, ‘인상’이라는 바로 그 의미가 가리키듯, 실제와 일정한―또는 상당한―거리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유자광에 관련된 이미지는 “고변과 음해로 정적을 숙청해 영달하다가 결국은 자신도 유배지에서 삶을 마친 간신” 정도로 요약될 것이다. 이 짧은 글에서 유자광의 다양한 면모를 온전히 서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긍정과 부정의 판단보다는 그에게 주어진 객관적 조건과 시대적 상황을 중시하면서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유자광과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은 그를 다룬 전기가 여럿 작성되었다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남곤(南袞)과 유몽인(柳夢寅)의 작품이다. 유자광의 어린 시절을 언급한 두 글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다.

      유자광은 부윤 유규의 서자인데, 몸이 날래고 힘이 세며 원숭이같이 높은 곳을 잘 타고 다녔다. 어려서부터 행실이 나빠 도박으로 재물을 다투고, 새벽이나 밤까지 길에서 놀다가 여자를 만나면 붙들어 강간하곤 했다. 유규는 유자광이 미천한 소생으로 이처럼 광패(狂悖)하므로 여러 차례 매를 때리고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남곤, <유자광전>, 허봉, [해동야언] 2

      유자광은 감사 유규의 첩이 낳은 아들이다. 남원에서 살았는데 어려서부터 재기가 넘쳤다. 깎아세운 듯한 바위가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시를 짓게 하자 즉시 “뿌리는 땅속에 기반을 두고 형세는 삼한을 누르네”라는 시를 지었다. 유규는 기이하게 생각하고 훗날 그가 크게 성취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유자광에게 매일 [한서]의 열전 하나씩을 외우게 하고 은어(銀魚) 1백 마리를 낚게 했는데, 암송에 막힘이 없었고 고기도 그 숫자를 늘 채웠다.- 유몽인, [어우야담] 권4

      흥미롭게도 두 서술은 완전히 상반된다. 그 까닭은 지은이의 정치적ㆍ문학적 성향 등과 관련해 좀 더 깊이 살펴보아야할 주제지만, 유자광이 그만큼 논쟁적인 인물이라는 측면은 충분히 보여준다.

      아무튼 두 기록을 종합하면 유자광은 신체와 정신의 능력 모두 상당히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은 사실로 여겨진다. 우선 뛰어난 용력은 여러 기록에 나타난다. 그 가장 대표적인 증거는 뒤에서 보듯이 그가 갑사(甲士)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다음으로 학문적 능력 또한, 어떤 가치 평가를 떠나, 무오사화에서 김종직(金宗直)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해석한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다. 성종 20년(1489) 장령 정석견(鄭錫堅)은 유자광이 장악원(掌樂院) 제조(提調)에 임명되자 “그가 비록 궁검(弓劍)과 문묵(文墨)의 재주는 있지만 전국시대(戰國時代) 협객(俠客)과 같다”면서 반대했는데, 부정적 맥락이기는 하지만, 유자광의 실체적 면모에 근접한 평가라고 생각된다(성종 20년 10월 28일).

      방금 말했듯이 유자광의 첫 직업은 갑사였다. ‘으뜸가는 군사’라는 그 의미대로 갑사는 국왕 호위와 수도 경비를 맡는 정예병이었다. 그런 임무상 그들은 당연히 뛰어난 무예를 갖춰야 했으며, 의장대로도 활동했기 때문에 용모와 체격도 뛰어나야 했다. 그들은 대체로 부유한 지배층의 자제로 정규 무관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지위를 인정받았으며, 교대로 지방에 내려가 복무하기도 했다.

      유자광이 출세하게 된 첫 계기는 세조 13년(1467) 5월에 일어난 이시애(李施愛) 난 이다. 그때 그는 28세의 갑사로 그동안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建春門)을 지키다가 남원으로 내려가 복무하고 있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시애 난은 세조 치세의 맨 끝머리를 뒤흔든 큰 변란이었다. 이시애 난이 일어나자 유자광은 즉시 도성으로 올라와 상소를 올렸다. 그 글에서 그는 “식사를 하다가 수저와 젓가락을 버리고 올라왔다”면서 “갑사에 소속된 뒤 항상 변방에서 공을 세우고 나라를 위해 한번 죽으려고 했다”고 아뢨다. 그때 전황은 관군이 상당히 고전하고 있던 상태였다. 유자광은 “함길도가 험하지만 그런 조건은 적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라면서 과감한 결전을 주장했다. 그는 “신이 미천하더라도 한 구석에서 싸워 조속히 이시애의 머리를 베어 바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적극적인 주장으로 긴 상소를 마쳤다.

      세조는 유자광의 글을 보고 경탄했다. “이 글은 내 뜻에 매우 합당하다. 참으로 기특한 재목이니 곧 임용해 그의 옳은 뜻을 시행하겠다.” 서자로 태어나 28세까지 갑사로 복무하던 유자광의 삶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계속해서 세조는 유자광을 불러 이시애를 잡을 방략을 물었는데, 대답이 모두 뜻에 합치했다. 국왕은 그를 크게 포상하고 겸사복(兼司僕, 정3~종9품)에 임명했다. 효용(驍勇)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시험하니, 앞서 나왔던 것처럼, 몇 계단을 한번에 뛰어넘고 큰 기둥을 원숭이처럼 올랐다(세조 13년 6월 14ㆍ16ㆍ30일).

      유자광의 방략 덕분이었는지 이시애 난은 석달 만에 진압되었다. 세조가 유자광을 더욱 총애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우선 관직에 나아갈 수 있도록 허통(許通)하고 병조정랑(정5품)에 임명했다. 병조정랑은 병조의 실무를 담당하면서 삼사 관직의 임명에 동의할 수 있는 권한(통청권〔通淸權〕)과 자신의 후임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자대권〔自代權〕)을 가진 요직이었다. 놀랄 만한 인사였다.

      앞서 유자광은 일생에 걸쳐 관직에 제수될 때마다 대간의 강한 반대에 부딪쳤다고 말했는데, 그 긴 대립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서자를 허통할 수 없다고 대간이 강력히 반대하자 세조는 단호히 제압했다. “너희들 가운데 유자광 같은 자가 몇 사람인가? 이미 허통한다고 했으니 무슨 관직이든 못하겠는가? 나의 특별한 은혜를 너희가 저지할 수 있겠는가? 나는 절세의 재주를 얻었다고 생각하니 다시 말하지 말라.” 실록은 서얼이 육조 낭관에 임명된 것은 유자광부터 시작되었다고 적었다(세조 13년 7월 14일ㆍ9월 22ㆍ25ㆍ28일).

      유자광에 대한 세조의 신임은 더욱 깊어졌다. 재위 마지막 해 세조는 세자와 함께 온양으로 행차했는데 유자광은 총통장(總筒將)으로 수행했다. 거기서 행차를 기념해 별시를 치렀는데, 문과 초시의 대책(對策) 중에 유자광의 답안이 낙방하자 세조는 시험을 주관한 신숙주에게 물었다. “유자광의 답안이 좋은 것 같은데 어째서 합격시키지 않았는가?” 신숙주는 “고어(古語)만 사용한 데다 문법도 소홀해 합격시키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세조는 “고어를 썼더라도 묻는 본의에 어그러지지 않았다면 괜찮다”면서 유자광을 1등으로 삼고 즉시 병조참지(兵曹參知, 정3품)에 제수했다. “조정이 놀라워했다”는 기록대로 파격적인 지시였다(세조 14년 2월 15일). 그러니까 유자광은 이시애의 난을 계기로 세조에게 발탁된 지 8개월 만에 갑사에서 정3품 당상관에 오른 것이다. 이때 그는 29세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유자광 [柳子光] - 서자에서 일등공신에 오른 논쟁적 인물 (인물한국사, 김범, 장선환)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자광은 처음부터 과거를 본게 아니라 궁궐의 문을 키키는 한직인 갑사(甲士)로서 건춘문(建春門)을 지키다가,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 당시에 자원하여 종군했으며, 임금의 총애를 받아 특별히 선략부호군(宣略副護君)이 되었고, 서얼 로서 벼슬길을 허통(許通)받고 후일 과거를 치루어 급제를 하게 된 케이스 입니다. 당시에도 공을 세우고 왕의 허락을 받으면 얼자도 과거를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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