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서양 모두 이런 예가 보이는데 서양에서는 특히 프랑스 루이 15세의 초기 섭정시대와 영국의 조지 3세의 말기 섭정시대가 대표적이다.
〈프랑스〉 루이 14세가 죽고 루이 15세가 왕위에 오르자 나이가 어려 오를레앙공 필리프 2세가 고등법원으로부터 섭정자로 임명되어 전권을 획득하였다. 이 섭정 시기에 필리프는 고문회의제도(顧問會議制度)를 두어 국가의 채무를 줄이고, 예수회 교단 세력을 억압하였으나 J.로를 등용한 정치가 실패로 돌아가자 공황이 일어나게 되었다. 나중에 섭정의 사부(師父)인 G.뒤부아의 활약으로 외교적으로는 영국과 에스파냐와도 연합하였으나 빈번한 궁중연회의 개최로 사회기강이 문란해지고 새로운 사상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의 시초로 보는 사람도 있다.
〈영국〉 1788년 조지 3세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자 섭정법이 준비되었다. 그러나 당시 황태자(뒤의 조지 4세)는 섭정 권한에 불만을 품고 휘그당과 연합하여 토리당 정부를 공격하였다. 1811년 조지 3세의 정신이상 증세 악화로 시력 장애가 심해져 친정(親政)이 불가능해지자 황태자가 섭정하여 20년 조지 3세의 사망 때까지 10년간 섭정시대가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 영국은 밖으로 나폴레옹전쟁·빈회의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안으로는 경제공황과 노동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으나 황태자의 사생활 문란 등으로 의회와 국민의 신뢰를 잃어 개혁은 이룩하지 못하였다.
출처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