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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 정상회의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G7 정상회의는 주요 7개국 정상 회담으로 선진7개국 정상회담 또는 서방 7개국 정상 회담은 냉전기 서방을 대표하는 7개 강대국이자 경제 선진국이었던 나라의 정상들이 모여 국제사회의 현안에 대해 연례 회의를 갖는 국가간 협의체입니다. 흔히 약칭인 G7으로 불립니다.산하 협의체로 G7 외교 개발 장관 회의 및 G7 재무장관 회의, G7 보건 장관 회의가 있는데 제1차 석유 파동의 발발로 인해 결정되었으며 1973년 비정기회의 당시는 G5로서 미국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의 5개국이 가맹이 되어 있었고 이후 이탈리아가 1975년 캐나다가 1976년에 각각 가맹하였습니다. 1977년 러시아가 추가로 가맹하여 가맹국이 여덟 개로 늘면서 명칭이 잠시 G8으로 바뀌었으나 2014년 러시아가 불법적으로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의 친러 반군 지원으로 돈바스 전쟁이 발발하면서 러시아가 G8에서 퇴출당하고 다시 서방국가의 협의체인 G7으로 돌아갔습니다. 동시에 2014년에 러시아 소치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회담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렸고 주요 7개국 정상회담이라고는 하나 유럽 연합이 유럽을 대표하여 비공식 가맹, 정기 참석함으로 유럽 연합 이사회 의장, 유럽 연합 위원회 위원장을 포함해 참여하는 정상은 총 9명이 됩니다. 여기에 매회마다 회의의 규모와 개최국의 인접성,국제정세 및 현안 등을 토대로 대륙별 지역 강국이나 강소국을 초청하며 다른 국제기구 및 비정부기구의 수장도 참여하여 실제 회의의 규모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 이 7개의 국가들이 지닌 공통점은 모두 인권과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공동 가치를 공유하며 선지국 중에서 경제적으로 꼽히는 주요 선진국들이란 점입니다. 군사적으로 대부분 강대국이고 최소 강국이라 불릴 수준은 되며 모두 민주주의가 확립되어 있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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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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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명왕성은 행성으로 인정하지 않는지?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 2000년대 초반까지 초 중 고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태양계의 행성 순서를 이렇게 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에서 제외가 됐는데 태양과 같이 스스로 빛과 열을 내는 천체를 항성 또는 별이라고 합니다. 별 주위를 도는 천체는 행성이라 하고 행성주위를 도는 천체는 위성이라고 하지요. 그 외의 천체는 소행성, 왜소행성 등으로 분류합니다. 명왕성은 몇 년 전까지 태양계의 행성이었지만 지금은 왜소행성으로 정의합니다. 왜소행성이란 행성과 위성을 제외한 천체 중 행성 같아 보이지만 일반 행성보다는 작은 태양계의 외곽 전체를 말합니다.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에서 제외된 것은 2006년입니다 국제천문연맹에서 결정한 것이죠 1919년 창설된 국제천문연맹은 세계 유수한 천문학자들이 모인 단체이자 천체 이름을 명명하고 정의하는 공식 기관입니다. 1990년대부터 태양계 외곽에서 작은 천체들이 많이 발견되자 국제천문연맹은 행성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06년 국제천문연맹에서는 태양계 행성의 정의를 태양주위를 도는 둥근 천체로 봐야 한다는 의견과 태양을 도는 천체 중 일정하게 큰 궤도로 돌아야 행성으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지요.국제천문연맹에서 내린 행성의 정의는 태양주위를 돌고 다른 행성의 주위는 돌지 않아야 한다. 둥근 모양이고 내부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지 않을만큼 질량이 크지 않아야 한다 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변에 잡동사니와 같은 천체들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명왕성은 태양주위를 돌고 둥근 모양이며 질량이 크지 않아 행성의 정의에는 부합합니다. 하지만 세 번째 기준에 걸렸는데 명왕성의 공전궤도에는 많은 얼음 덩어리 천체들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여덟 개의 천체에는 잡다한 천체들이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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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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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은 실존인물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길동은 실제 인물인데 역사 기록에 전하는 홍길동이 주로 활동한 지역은 처음 충청도 충주 일대였고 일반 도둑들처럼 산중에 들어가 근거지를 두고 활약한 흔적은 없습니다 홍길동은 정상품 당상관인 '첨지중추부사'를 지칭하면서 무리를 이끌고 마음껏 활보하면서 관가에 들어가 기탄없이 행동했다고 하며 이렇게 당상관을 지칭하기 쉬웠던 것은 그의 이복형인 홍일동이 실제로 당상관이었기 때문에 형의 관복을 입고 당상관을 자칭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의 이러한 기세 눌린 지방의 권능,이정,유향소의 좌수,별감 등도 알아볼 정도였고 일반 백성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조정은 홍길동에게 강상죄를 적용하였습니다. 또 조정에서는 홍길동의 이러한 행동이 지방 관리와 유향소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해를 넘긴 1501년까지 관련자를 잡아 국문하였고 홍길동을 도운 죄로 잡힌 지방 관리 엄귀수는 끝까지 국문에 승복하지 않다가 옥사를 당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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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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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의 니콜라이 2세는 어떤 황제로 평가되나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니콜라이 2세는 1868년 당시 알렉산드로 2세의 황태자 였던 알렉산드로 3세와 덴마크의 다우마의 맏이이자 적장자로 태어났습니다 니콜라이 2세의 이름인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로마노프는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한 큰 아버지인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황태자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아버지 알렉산드르 3세가 붙여 주었습니다. 1881년 부친의 즉위와 함께 황태자로 책봉이 되었고 황태자의 적장자로 태어나 원손→ 황태손→ 황태자→ 황제 즉위 과정을 다 밟은 엄청난 정통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조선의 숙종과 비슷하지요 세계사적으로도 이 정도로 견고한 정통성을 가진 군주는 드뭅니다. 불행히도 그의 능력은 그의 막강한 정통성을 따라가지 못했는데 러일전쟁 패전 이후 벌어진 경제난과 피의 일요일 사건에서의 잘못된 대처로 니콜라이 2세는 러시아인들의 지지를 잃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황이 악화되면서 진퇴양난에 처했지요. 니콜라이 2세가 직접 러시아 제국군 사령관으로 나가 있는 동안 국내 정치는 아내인 독일제국 헤센 대공국 출신의 알렉산드라 표도로 브나 황후가 맡았는데 그녀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요승 그레고리 라스푸틴 때문에 러시아는 내부적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라스푸틴은 황후의 신임을 얻고 권력을 휘두르고 각종 괴상한 정책들을 제안하여 국가의 혼란을 가중시켰죠 러시아 궁정의 모두가 라스푸틴을 싫어했고 황제의 여동생 올가 여대공, 황후의 둘째언니 엘리자베타 대공비 같은 황족들까지 오빠와 여동생에게 라스푸틴을 멀리하라고 했지만 황후는 친척들의 조언조차 무시했으며 니콜라이 2세는 부인 심기를 건드리기 싫다며 듣지 않았지요 당연히 신하들과 국민들의 원성은 높아져가고 니콜라이 2세 본인은 권력을 휘두르는 라스푸틴을 황후처럼 맹신하진 않았지만 문제는 그가 아내와 충돌하기 싫어서 막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농민 출신인 라스푸틴을 통해 백성들의 실생활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의 방탕한 행동 또한 백성들의 한 단면이라 생각하고 딱히 저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변의 원성에 라스푸틴을 잠시 유배 보내긴 했지만 그런 조치조차 상황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마저도 니콜라의 2세가 아니라 표토르 스톨리핀이 주도하여 쳐냈는데 황제는 라스푸틴을 쫓아낼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스톨리핀이 강경하게 라스푸틴 추방을 요구했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던 러시아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자 핀란드 대공국의 마지막 대공이자 러시아의 마지막 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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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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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삼절이 박연 폭포, 서경덕, 황진이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경덕에 대해서는 민간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황진이와의 일화입니다 당대 최고 기녀였던 황진이가 서경덕을 존경하였으며 자신과 박연폭포 서경덕을 송도 삼절이라고 칭하겠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지요. 황진이는 송도에서 뛰어난 세 가지로 첫째는 산수 경치에 박연폭포, 둘째로는 화담 서경덕 그리고 셋째 자신을 꼽았다고 합니다. 당시 도학이 높다는 사람의 여색에 대한 태도를 시험해 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첫째 유학자인 퇴계는 담담하려고 하지만 무척 고민하는 눈치였고 둘째 화담은 자신의 요구대로 쓸어 안아주기까지 하는데 마치 물건을 다루듯 전혀 관심 없어 보였고 셋째 면벽 9년의 생불 스님이라는 지족선사는 전혀 접근도 못하게 하다가 그만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파계하여 돌아 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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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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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제도는 언제 시작된것인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민주주의는 종종 기원전 500년경 그리스로 확인되는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만들어졌다고 가정되며 이는 넓은 의미에서 민주정부가 5세기 이전 세계의 여러 지역의 존재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한 부족과 같은 경계가 뚜렷한 집단에서 민주주의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만약 그 집단이 외부인에 의해, 통제에 의해서 충분히 독립되어 있어서 구성원이 자신의 업무를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부족의 장로들과 같은 상당수의 구성원이 그룹의 관심사에 대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동등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말입니다 이러한 가정은 비문학적인 부족 사회에 대한 연구에 의해 뒷받침되어 왔는데 이것은 인간이 사냥과 채집을 통해 살아남은 수천 년 동안 많은 부족 집단들 사이에 민주정부가 존재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초기 인류에게 민주주의는 실용적이고 가장 자연적인 정치 체제로 보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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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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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태극기는 최초로 누가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태극기는 1882년 박영효가 고종의 명을 받아 일본에 가면서 태극 4괘 도안의 기회를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박영효과 만든 것이라고 전해지는데 1882년 8월에서 9월 특명 전권 대신 겸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박용효였다는 것이 정설인데 박영효의 사화기력에는 태극기를 만든 것이 1882년 9월 25일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두 달 이상 이른 7월 19일에 이미 미국에선 태극과 사괘로 이루어진 조선 국기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박영효가 만들었다는 태극기보다 최소한 이 2~3개월 앞서 조선국인 태극기가 존재했다는 것이 됩니다 1822년 5월 22일 제물포에서 중요한 행사가 거행됐는데 조선이 미국과 수교를 맺은 조미 수호 통상조약 조인식이 있었는데 이때 미국 성조기와 나란히 조선의 국기가 걸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분명 누군가 사진을 촬영했겠지만 1882년 5월 22일에 계양됐던 조선 국기가 무엇인지는 알수가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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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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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지본처라는 말은 무슨뜻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환지본처는 불교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인데 그 뜻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이며 여기서 말하는 본처란 있어야 할 자리라는 의미이고 임진왜란과 같은 외란이나 일제강점기 때 강탈 또는 도난당한 불교계 문화유산들의 환수를 요구하는 불교계의 명분으로 자주 사용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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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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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소련이 아니라는것이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산주의의 시작은 20세기 초에 러시아 제국은 자르 니콜라스 2세에 의해 지배된 독재 정치였으며 러시아에서는 수백만 명의 농민의 비참한 가난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반공 역사가 로버트 서비스는 가난과 억압이 마르크스 주의가 성장하기에 가장 좋은 토지가 되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념을 이 나라에 도입한 가장 큰 책임이 큰 사람은 게오르기 플레카노프였지만 이 운동 자체는 한동안 그의 신념으로 인해 시베리아에 있는 수용소에 유배되었던 블라디미르 레닌에 의해 조직되었고 러시아 사민당이라고 알려진 마르크스의 집단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와 율리우스 마르토프가 이끄는 멘셰비키라는 두 개의 주요 파벌로 나뉘었지만 러시아에서 결정이 되었고 1905년 차르 통치에 반대하는 혁명이 일어나 소련이라고 알려진 노동자 협의회가 전국 각지에서 결성되었고 차르인들은 민주개혁을 강요받았고 선출된 정부인 두마를 도입했습니다. 1917년 1차 세계대전에 러시아를 포함한 두마에 대한 사회적 불안과 함께 볼셰비키들은 10월 혁명에서 정권을 잡았고 그들은 다양한 산업을 국유화하고 부유한 귀족들로부터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재 분배함으로써 나라를 대적하기 시작하고 그들은 이후 독일과의 전쟁에서 철수하여 러시아에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없었던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의 서명하였고 새 정부는 처음부터 조지아 민주공화국에서 집권한 무정부주의자, 사회 민주주의자, 러시아 사마라에서 코무 흐를 조직한 사회주의 혁명가, 서방세계뿐 아니라 백위군으로 알려진 차리스트 저항 세력을 흩뜨리는 등 다양한 시각을 가진 무수한 세력들의 저항에 직면했는데 이것은 볼셰비키들이 러시아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그 후에 그들의 권력을 온 나라에 통합함으로써 수도 모스크바의 크렘린으로부터 권력을 집중시켜 1922년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수업이어트 공화국은 공식적으로 소련 사회주의 공화국 연합을 이끌도록 재설계 된 것입니다 1924년 레닌은 건강이 좋지 않아 소련의 지도자직을 사임하고 곧 사망하였고 이후 스탈린이 통치권을 장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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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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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옛날부터 내려오던 무서운이야기 그슨새 이야기는 무슨내용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주도의 전설에 나오는 요괴인 그슨새는 제주도의 특성이 무척 잘 드러나는 요괴인데 주젱이라는 제주도의 우장을 뒤집어 쓴 채 길거리를 돌아 다니며 제주도에서는 사악한 기운을 기운이나 액을 세라고 하거나 원통하게 죽은 영혼은 새가 된다고 믿기도 했지요 그 이유는 한자 '사'자가 와전되어 새로 '음'이 바뀌었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또 다른 추측에 의하면 옛날 제주도에서는 살인을 한 죄인들에게 주젱이를 씌우는 일이 있었는데 그러한 죄인들이 죽어서 요괴가 된 것이라고도 하지요 그슨새도 '새' 자가 붙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주 사악한 악귀이며 일반적인 요괴나 귀신들과는 달리 낮에 돌아다니며 혼자 있는 사람을 해치고 홀려서 죽인다고 합니다 그슨새에게 홀린 사람은 정신이 얼이 빠지게 되는데 그슨새가 혼자 있는 사람만을 노리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홀린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말리면 멈추게 되어 혼자 있는 사람만 노린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남성의 속성이 강한 존재라고 하는데 비슷한 이름의 그슨대 와는 다릅니다 그슨대는 밤에 그슨새는 낮에 돌아다니며 카테고리 자체가 다르지요 그슨새는 전형적인 우산 요괴(독각귀) 그슨대는 음흉한 그림자 귀신이라 아예 근본부터 다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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