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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는 왜 막내를 세자로 책봉했나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태조 이성계를 왕이 되게 한 막후인물이 강씨부인입니다. 강씨부인은 강인한 성격으로 이성계를 왕위에 앉힌 인물입니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와의 관계를 단절시키고자 하였고 그런 까닭에 기존 결혼한 아들들은 어떻게든 고려 호족들과 사돈이거나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어린 방석을 통해 고려와의 연을 단절시키고자 하여 왕세자로 책봉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강씨부인의 입김 또한 강하게 들어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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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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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과 여진족은 어떤 차이가 있는건가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거란은 5세기에 발원하여 10세기 초에 발해를 멸망시키고 중국 북부와 만주를 아우르는 동아시아의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여진은 12세기에 완옌부가 부족을 통합하면서 세력을 키웠으며 1115년 금나랴를 세우고 거란을 멸망시켰습니다. 여진의 금나라 또한 몽골제국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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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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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 두는 자리끼라는거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자리끼는 잠자리 들기 전 혹은 중간에 깨어났을 때 마시기 위해 머리맡에 두는 물을 일컫는 순우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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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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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어의는 직급이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현대에 이르러 의사는 사회 지도층 인사로 상위계층에 속하지만 조선시대에 의원들은 중인계급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어의는 지금의 대통령 주치의에 해당합니다. 과거와는 다르게 의사에 대한 처우에 대한 대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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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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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규에 대한 기록은 왜 이렇게 부족한 건가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시대 무신으로 강조정변을 빌미로 거란이 2차 침입을 해왔을 때 홍화진에서 거란의 40만 대군을 막아내자 거란군은 우회하여 개경으로 향하였습니다. 개경을 점령한 후 돌아가는 거란군이 민간인을 포로로 끌고가자 이를 구하고자 7차례에 전투를 벌여 7차례 승리를 거두고 1만여명의 민간인을 구출하였으나 거란의 대군에 포위되어 결국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양규장군의 빛나는 전투성과와는 달리 양규장군에 대한 사료가 남아 있는 것이 없어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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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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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왜 죽임을 당한건가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봉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의 전폭적인 지지로 조선의 정치 사회 문화 등을 성리학적 관점으로 조성해간 일등공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왕권을 강화하고자 한 태종 이방원에게는 신권을 강화하려는 정도전이 눈엣가시였기 때문에 결국 왕권강화를 위해 정도전을 제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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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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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왜 정몽주를 살해했나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여말선초의 신진 사대부들은 목은 이색의 휘하에 절의파 포은 정몽주 등이 있었고 역성혁명파 삼봉 정도전 등이 있었스니다. 정도전 등이 새로운 국가를 추구한 반면 정도전은 고려를 그대로 둔 채 개혁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정몽주는 역성혁명파들에게는 눈엣가시로 보였으며 이방원이 설득하고자 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자 선즉교에서 철퇴로 때려 죽였습니다. 이는 강씨부인의 지시에 이방원이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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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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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선무 라는 말은 언제부터 사용하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맹자 왈 지혜로운 사람은 알지 않음이 없지만 마땅히 힘써야 하는 것을 급하게 한다. 인한 사람은 사랑하지 않음이 없지만 어진 이를 친히 하는 것을 급히 함에 힘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맹자 왈 삼년상을 하지 않으면서 시마복과 소공복을 살피며 밥을 크게 뜨며 국을 한꺼번에 마시면서 마른 육포를 이로 끊지 말라고 따지는 것은 급선무를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급선무라는 단어가 맹자의 말에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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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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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와 차례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상숭배 실천윤리의 하나로 기제사는 사망한 날을 추모하여 지내는 의례이고 묘제가 4대조 이상 조상의 묘를 찾아 추모하는 의례라면 차례는 조상에게 달과 계절 해가 바뀌고 찾아왔음을 알림과 동시에 시식과 절찬을 천신하는 의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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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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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 박문수는 정말 어떤사람이었나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실제 역사 속에서 박문수는 정작 암행어사로 파견된 적이 없었습니다. 박문수는 소론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총명하게 자랐다고 합니다. 나랏일을 할 때 당파를 뛰어넘어 판단하는 모습을 보고 영조는 탕평책에 어울리는 인재로 생각했습니다. 박문수는 영남지역에 암행어사가 아닌 어사로 파견되었습니다. 영남지역에 가서 본 것은 극심한 흉년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가슴이 아픈 나머지 자신의 곡식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정의 대신들에게도 곡식을 내놓기를 청하였습니다. 이에 영조는 박문수의 보고로 관리들의 월급을 줄여들백성을 구제하는데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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