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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어디까지 하늘로 볼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과학전문가입니다.하늘에 대한 기준은 없지만 우주에 대한 기준이 있으니 우주 이하를 하늘로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일반적으로 '우주' 하면 떠올리는 지구 대기권 바깥의 검은 공간을 가리킵니다. 그 경계 지점은 고도 118km에 해당합니다. 이전에는 인공위성이 공전할 수 있는 한계 고도인 150km 이상을 우주로 보았으나, 우주경계선#을 발견한 뒤로 다른 우주 관련 기록과 함께 수정되었습니다. 118km 이하를 지구에서 보는 하늘로 기준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지구과학·천문우주
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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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냄새는 입자로 되어 있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과학전문가입니다.입자가 아니라 냄새 가스 입니다.냄새가 대변 냄새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역하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방귀는 대변의 작은 입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방귀와 대변의 성분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방귀는 장에 있는 가스가 배출되는 현상입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화학
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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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유명한 직지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네 알고 계신 직지심체요절이 맞습니다.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책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입니다.이 책의 이름을 줄여서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주최한 ’책’ 전시회에 「직지심경」이라 소개되면서 한때 잘못 불리기도 하였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역사
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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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님은 한글을 만드는데 얼마나 걸렸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세종대왕님은 한글을 만드는 작업을 은밀하게 추진했기 때문에, 실록에도 한글 창제와 관련된 기록이 분명히 나오지 않습니다. 왕과 관련된 대부분의 사건은 날짜를 정확히 명시해서 기록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 한글 창제와 관련된 기록은 실록에 전혀 보이지 않다가 1443년(세종 25) 12월 조의 맨 끝에 날짜를 명시하지 않고서 그냥 ‘이번 달에 왕이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3년 뒤인 1446년(세종 28) 9월 조의 맨 끝에 역시 날짜를 명시하지 않고서 ‘이번 달에 훈민정음이 완성되었다(是月訓民正音成)’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두 기록을 놓고서 현대의 학자들은 약간의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1443년 12월에 한글이 일단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거기에 문제점이 많아서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3년 동안 해서 1446년 9월에 한글을 제대로 완성했다는 식으로 해석을 내리게 되었고, 그렇다면 1443년 12월보다는 1446년 9월을, 한글이 만들어진 시기로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실록에 9월 며칠인지 날짜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니 그냥 9월 그믐날로 가정하고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29일을 한글날로 정하게 되었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역사
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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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복례가 무슨뜻 인가요?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극기복례의 정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서 극기복례가 무슨 뜻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극기복례 ( 克 己 復 禮 ) 자기자신의 사욕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갈 것을 가리키는 유교용어입니다. 자기자신의 사욕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갈 것을 가리키는 유교용어로서 『논어』「안연편(顔淵篇)」에서 공자가 제자인 안연에게 인(仁)을 실현하는 방법을 설명한 말입니다.사실 잘 사용되어지지는 않는 말인데 어떤곳에서 읽으신 글인지 궁금합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역사
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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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타면 귀가 먹먹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과학전문가입니다.비행기를 이용할 때뿐만 아니라, 자동차나 기차 등 빠른 교통 수단을 탈 때 귀의 평형 감각이 균형을 잃게 되는데요. 이때 귀가 멍멍해지거나 멀미가 나게 됩니다. 이를 바로 이관현상이라고 하는데요. 이관현상은 보통 이착륙할 때 많이 발생하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기압이 낮은 하늘에서 기압이 높은 지상으로 내려오거나 이와 반대로 올라가게 될 경우 귀의 한 부분인 중이에 압력이 달라져 발생하게 된다고 합니다.이 현상은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뿐만 아니라 높은 산으로 올라갈 때, 엘리베이터가 빠른 속도로 하강할 때,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터널을 지날 때, 깊은 물 속으로 잠수를 할 때에도 느낄 수 있는 증상입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지구과학·천문우주
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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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그림은 어떻게 유명하게 된 거죠?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피카소가 유명한 이유는 원근법이라는 미술계의 바이블, 고정관념을 부숴버렸기 때문입니다. 피카소의 대표작을 생각해보시면 똑같이 그린다는걸 전재했을때 아주 기괴하게 그렸습니다. 하지만 이건 피카소가 똑같이 그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피카소가 10대때 그린 초기작을 보면 아주 디테일 한 세부묘사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었습니다. 후에 기괴한 그림을 그렸던 이유는 입체주의, 입체파 라고 해서 동료인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눈에 보이는데로 묘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특정 대상은 눈의 위치, 방향에 따라 달라 보입니다, 이걸 캔버스에 그대로 옮기는 작업을 하게되는데 이것이 입체파의 시작입니다. 3차원의 대상을 2차원의 평면에 옮기는게 회화의 기본문법이었는데 이걸 파괴해버렸으니 미술계에 큰 이슈가 되었죠. 이후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이것이 야수파(색상의 파괴) 이후 대상을 아예 없애버리는 절대주의, 추상주의 까지 나아가게 되죠. 이것이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 이기도 합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미술
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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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반구 북반구에 따른 물 회전방향이 다른 이유?
안녕하세요. 김찬우 과학전문가입니다.남반구와 북반구에 따라 반드시 물 회전방향이 다르진 않습니다.지구가 돌면서 발생하는 현상 중 하나는 '코리올리 효과' 또는 '코리올리 힘'(전향력)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습니다. 코리올리 효과에서는 지구가 '달리는 버스의 역할'을 하는 것인데 지구와 함께 돌아가는 입장에서는 정북쪽을 향해 직선으로 물체를 빠르게 던졌지만 실제로는 지구가 돌고 있었기 때문에 비스듬하게 휘어 날아갑니다이런 전향력은 북반구에서는 진행 방향의 오른쪽으로, 남반구에서는 진행 방향의 왼쪽으로 작용합니다. 그 결과 태풍이나 물 소용돌이는 전향력의 영향을 받으면 북반구에서는 반시계방향으로, 남반구에서는 시계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런 전향력은 북반구에서는 진행 방향의 오른쪽으로, 남반구에서는 진행 방향의 왼쪽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태풍이나 물 소용돌이는 전향력의 영향을 받으면 북반구에서는 반시계방향으로, 남반구에서는 시계방향으로 흘러갑니다.과거 일부 교과서와 과학 교양 서적에서는 전향력의 효과로 북반구와 남반구의 변기나 세면대의 물이 전향력의 영향으로 반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설명하기도 했다.이는 절반만 맞습니다. 흘러가는 물은 유체이기 때문에 전향력의 효과를 받을 수 있지만, 회전 반경이 매우 작아 전향력의 효과가 미미합니다. 실제 실험을 해보면 초기 물이 흘러오는 방향, 세면대나 변기의 굴곡 등 표면 구성 등에 따라 회전 방향이 쉽게 바뀔 수 있습니다. 굴곡이나 물의 흘러오는 방향의 편향성 등 변수를 최소화하면 전향력의 효과를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일상적인 세면대나 변기에서는 쉽게 보기 어렵습니다. 실제 북반구에서도 시계방향으로 도는 변기 물을 볼 수도 있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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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과학·천문우주
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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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은 언제 처음 생겼는지 알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서당의 기원은 고구려의 경당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송나라 사람이었던 서긍의 고려도경에서도 서당의 존재가 언급되며 조선시대에는 여러가지 형태의 서당이 세워졌고 일제치하에서도 여전히 서당은 존재하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자연스럽게 소학교가 서당을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서당에 대해 탄압하지 않았습니다.주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서당의 주인이자 선생인 훈장이 이들을 가르칩니다. 무학년제로 운영되었다. 입학은 대체로 동지에 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12월 학기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교육은 강독과 제술, 습자로 이루어졌다. 보통 오전에는 강독, 오후에는 습자, 야간에는 제술을 학습했습니다.강독의 경우 기본적으로 천자문을 시작으로 유합, 동몽선습, 사자소학, 추구 등까지 기초교육이 이루어지고 그 다음으로 통감절요로 들어가서 한문 문리를 터득하게 되고 그 외에 명심보감, 채근담, 삼강오륜, 근사록, 소학 등도 기본 교양으로 가르칩니다제술의 경우 오언절구, 칠언절구, 사율, 고풍, 십팔구시, 작문으로 이루어졌으며 주로 서당의 고학년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제술은 문학적 소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훈장의 자질에 따라 제술이 제외되기도 했습니다.습자의 경우 붓으로 글씨를 쓰는 교과인데 글씨를 반듯하게 쓰는 해서를 주로 쓰며 단계적으로 행서와 초서로 나아갔습니다. 어릴수록 아무래도 소근육 발달이 더딜 수밖에 없다보니, 대다수의 학동은 강독보다 습자를 더 부담스러워했다고 합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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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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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에 몽골은 고려에도 화포를 가져왔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몽골의 침임은 30여년간 이어졌습니다. 1231년(고종 18)의 1차 침입을 시작으로 한 몽골의 고려 침입은 1259년(고종 46) 고려와 몽골 사이에 강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거의 30년에 걸쳐 간헐적으로 지속되며 고려 사회에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기마병 위주였고 당시에 화포를 사용했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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