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시의 옛지명이 충무시 가 맞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말씀하신데로 예전의 통영시가 충무시로 불리었습니다."1914년 용남군과 거제군을 합쳐서 통영군으로 개편하고 춘원면을 통영면으로 개칭하였다. 1931년산양면의 북부를 통영면에 편입하여 통영읍으로 승격하였다. 1955년통영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이순신의 시호를 따서 충무시로 개칭하였다."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8135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에서 검색한 내용을 덧붙여 드립니다.그럼 도움이 되셨길 빌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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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나 조각 등 예술 작품에는 이름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데, 왜 그런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해설을 하고 있는 김찬우 라고 합니다.무제 란 제품을 달고 있는 작품이 많은 이유는 저는 이렇게 설명을 해드립니다.특히나 현대미술작품에 무제가 많은데, 굳이 제목을 붙이지 않는 이유는제목을 붙임으로써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관객들은 작품을 보았을때 작품 자체에서 작품의 의미, 내용들을 찾고자 합니다.그러기위해서 사실 작품을 깊숙히 들여다보고 내면에서 그 의미를 확인해봐야하지만사실 그런 작업은 쉽지 않습니다.저도 마찬가지지만 작품을 보고 그 작품을 알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제목을 확인하는 방법입니다.하지만 제목이 적혀져있을 경우, 보통 제목이 작품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기에 때문입니다.하지만 현대미술 작품의 경우 주제가 열려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상황에 따라, 시대에 따라, 개인의 마음상태에 따라 달리보일 수 있는 작품들이 많기에굳이 관람객에게 제목을 붙여 감정의 흐름을 제한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무제로 제목을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글머 도움이 되셨길 빌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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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은 원래는 해인사에 보관했던게 아니라, 조선 초기에 해인사로 옮겨졌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강화도에서 만들어져 보관중이던 팔만대장경이 합천의 가야산 해인사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그 이유는 어찌보면 가장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이유였습니다.고려시대에 최초로 만들어진 구판대장경이 있었는데 몽공군의 방화로 소실되었습니다.그래서 몽골과 가까운 강화도와 서울은 안전한 지역이 아니었습니다.그래서 서울과 멀리 떨어져 몽공의 침략이나 왜구의 노략질을 피하기 위해서먼 남쪽땅인 합천 가야산의 해인사로 대장경판을 옮겨던 것입니다그럼 도움이 되셨길 빌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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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는 어떤업적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866년 왕비로 간택된 명성황후지만 자식을 두지 못해 스트레스가 많았다.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도 갈등과 긴장 관계를 유지했습니다1873년 흥선대원군이 하야하고 1874년 순종을 출산하면서 명성황후의 위상은 올라갔습니다명성황후는 친정 인물들을 요직에 등용하면서 고종보다도 큰 권력을 행사했으며 명성황후와 민씨 외척은 흥선대원군 시대의 대외 폐쇄보다는 개화와 개방을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했습니다청일전쟁으로 일본이 승리하며 조선에 대한 일본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은 압도적으로 커졌기에 명성황후는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 러시아임을 인식하고 친일 세력을 축출한 후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했습니다.이 때문에 을미사변으로 일본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시해를 당하시게 되었습니다.업적에 명과 암이 있으나 밝은부분만 작성해보았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길 빌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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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가 맞나요, 도스토예프스키가 맞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언어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둘다 맞다는 어설픈 답변보단 국립 국어원에서 정보를 검색하여 답변 드리겠습니다.외래어 표기법중 러시아어 표기와 관련된 답변이 있어 옮겨 적어 드립니다.'Dostoevskii'는 러시아어 표기법에 따라 '도스토옙스키'로 적습니다. 외래어 표기법 표기 세칙 제1 항에서 "파열음과 마찰음 f(ф)·v(в)는 무성 자음 앞에서는 앞 음절의 받침으로 적고, 유성 자음 앞에서는 ‘으'를 붙여 적는다."라고 밝힌 것에 따라 'v'를 앞 음절의 받침 'ㅂ'으로 적은 것입니다. 이를 '도스토예프스키'로 적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224854&pageIndex=1링크 남겨드립니다.답변이 되셨길 빌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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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라는 말의 어원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돈의 어원, 돈은 돌다에서 왔다고 알고 있었는데 설명이 부족한거 같아 한번 찾아보았습니다.돈’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이에 관련된 어원설은 다양하다. 민간에서는 오래전부터 ‘돈’의 어원을 ‘돌다[回]’에서 온 것 또는 한자 ‘동(銅)’과 ‘은(銀)’이 합음(合音)된 것 등으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이들 설은 그야말로 민간어원에 불과하다. 이 외에도 ‘돈’이 칼을 뜻하는 ‘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고려 말까지 ‘錢’과 ‘刀’는 화폐를 의미하는 뜻으로 나란히 쓰였고, 소리도 ‘도’와 ‘돈’으로 같이 쓰이다가 조선시대에 한글이 창제된 뒤 ‘돈’으로 통일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刀’가 무게의 단위 ‘돈쭝(1돈쭝은 한 돈쯤 되는 무게)’으로 변용되어 ‘도’가 ‘돈’으로 와전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또한 ‘돈’은 한 사람이 많이 가지게 되면 칼의 화를 입기 때문에 그것을 훈계하기 위해 ‘돈’을 ‘刀’라 하고 그것을 ‘돈’으로 읽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고대 무덤에서 출토되는 명도전(明刀錢)과 같은 화폐가 칼 모양으로 생겼다는 것이 이 설명의 증거 자료로 제시된다. 그러나 ‘刀’에서 유래했다는 설은 ‘도’가 ‘돈’으로 바뀐 이유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https://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404089> 링크 남겨드립니다.돌다와 칼에서 왔다는 설은 있으나 문서화되어 돈에대해 언급되어 있는 정확한 어원은 없다 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도움이 되셨길 빌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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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로 양복을 입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최초로 양복을 입은 사람은 사실 기록으로 찾아볼 수 없을거라 생각했는데자료를 찾다보니 기록이 있었습니다.구한말 개화파 정치가 서광범 님으로 1881년 신사유람단으로 해외를 방문했었는데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에 의해 양복을 입게 되었다고 합니다.일본 요코하마 양복점에서 30달러짜리 양복을 구입하였는데 이게 우리나라 최초의 양복이라고 합니다.답변이 되셨길 빌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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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왕들의 어진을 그린것이 왜 남아있지않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시 아시다시피 초상화 라는거 자체가 임금 이외에는 제작을 엄격히 금지할 정도로초상화를 제작하는거 자체를 금기시하고 왕의 어진은 국가사업으로 추진될 정도로 중요했습니다.초상화가 대상을 신격화 할수 있어 제작을 하더라도 아무나 볼수 없게 관리를 하였습니다.그런 임금의 어진을 많이 찾아볼수 없는 이유는 예상하셨겠지만 대부분 소실 되었기 때문입니다.조선전기의 어진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 거의 불에 타버렸고조선후기의 어진은 한국전쟁당시에 거의 소실되었습니다도움이 되셨길 빌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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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작품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통해 무엇을 나타내고자 한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해설을 맡고 있는 김찬우 라고 합니다.해당 작품은 아시다시피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란 작품으로문학, 영화, 드라마 등 많은곳에서 차용 등을 통해 등장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작품 입니다.현재 네델란드 마우리츠하위스 에 소장되어 있습니다.전시를 해설하는 입장이다보니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해당 작품의 의미는 어떻게 되나요?''작가는 왜 이작품을 그렸나요?'조금 기대와 다른 대답일지 모르지만작가가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적어놓는 공간을 '작가노트' 라고 하는데작가노트에 작가가 직접 작품에 대해 적어놓지 않으면 우리는 그 작품에 대해시대상황, 작가의 성향 등을 대입해서 상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사실 베르메르는 고흐와 마찬가지로 생전에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고17세기의 작가인데 생후 19세기가 되어서야 인정을 받고 작품 역시 인기가 많아지게 되었습니다.그러므로 당시 작가노트가 없으므로 작가의 의도를 알수 없다 라는게 정답이며여기에 이것저것 해석을 붙이는건 사족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답변이 되셨길 빌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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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라는 나라가 존재한게 맞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가야는 삼국시대 초중방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여러국가의 총칭으로 불리 나라 입니다.금관가야, 대가야 등이 있었습니다.삼국유사, 일본서기,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 책에 가야대한 기록이 있으므로실존했던 나라가 맞습니다현재 남아있는 역사적인 유물도 많이있습니다.그럼 답변이 되셨길 빌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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