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사도세자는 어떤것때문에 갈라졌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그런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조가 욕을 많이 먹는 거구요설령 사도세자가 영조의 평가 그대로의 쓰레기 였다고 해도자식을 가둬서 굶겨 죽인 잔인함을 볼때 영조의 자식교육 자체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실제로 영조가 본인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도세자를 정치적 방패로쓴 기록이 너무 많기 때문에그냥 영조가 권력에 눈멀어서 자식도 적으로본 쓰레기 였다는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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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폴란드 침략의 명분은?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베르사유 조약때문입니다.이 조약 떄문에 단치히가 분리 독립되서 자유시가 되었고독일이 바다에 진출하기 힘들도록 폴란드 회랑으로 알려진, 바다로가는 길목을 폴란드에게 주었기 때문에이를 도로 차지 하기 위해서 라는 명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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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왜 항소하지 않으셨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해봤자 소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한국인이 일본인을 죽인 사건을 일본법원에서 재판하는게 공정한 결과가 나올리가 없죠오히려 항소=살고싶어하는 비겁함 으로 왜곡되서 선전에 사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재판 결과를 의연하게 받아들임으로서 한국인의 당당함과 정의를 알리려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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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세계대전을 발발하게한 사라예보사건은 어떤 것인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14년 6월 28일 현재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암살사건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이기도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 부인이청년 보스니아라는 민족주의 조직에 속한 대삭생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되었습니다.당시 황태자는 게르만인과 슬라브인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온건정책을 준비하고 있었으며이때문에 독립을 원하는 세력이 방해가 된다고 판단해 암살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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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누스 황제는 왜 이름을 아우구스투스로 바꾼 건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우구스트는 이름이 아니라 제호, 그러니까 황제로써의 칭호의 일부입니다[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임페라토르 =통솔권(임페리움)을 가진자. 원래 있던 칭호임카이사르=개인 성씨.아우구스투스=존엄한자이런 뜻 입니다. 이름을 옥타비아누스에서 바꾼 적은 없어요.이중에서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27년, 경쟁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했을때로마를 명목상 이나마 공화정체제로 되돌렸기 때문에 원로원이 아부할 겸 수여한 것 입니다.아우구스투스 본인은 독재자가 아닌 척을 하고 싶었는지 살아 생전엔프린켑스(Princeps=제1시만 )라고 자칭했습니다만,후대가 황제를 자칭하면서 자기들 제호에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를 넣는걸 전통으로 만들었기 때문에옥타비아누스 또한 아우구스투스로써 더 유명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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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토미가 임진왜란 출전 안 한 이유?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본이 동원한 병력이 워낙 많아서 초기부터 원정나갔으면 격침은 못했을 겁니다.당시 이순신 장군님은 아직 전라도만 담당하셔서 일본군에 대응 못했어요하지만 나라 통일한 직후이기 때문에 애초에 지도자가 원정나가는건 말도안됩니다인터넷이 있는 현대가 아니기 때문에 지도자가 멀리 갈 수록 본토 통제가 느려지는데그러다가 남아있는 반란군들이 날뛰면 그대로 끝장이니까요물론 그렇게 따지자면 임진왜란에 동원한 병력수도 말도안되는 결정이긴 한데도요토미는 천민출신(추정, 최소한 귀족은 아님)이라 국제사회 관련 교육을 못받은 반면전국시대에 실전으로 구르면서 일본국내관련은 확실하게 배웠기 때문에이런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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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킴플레이션이란 무엇을 말하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스킴은 쪼잔하단 뜻의 영어고 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을 뜻합니다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구요다시 말해서 물가는 계속해서 오르는데물건과 서비스의 질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기업이 자주하는 쪼잔한 짓을 스킴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과자봉지에 질소가 계속 늘어나거나 하는게 대표적인 스킴플레이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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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에 팥을 먹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동지 팥죽에 관한 기록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팥은 예로부터 악귀예방의 힘이 있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콩 종류라서 단백질도 있고, 귀한 단맛을 느낄수도 있는 팥이 겨울 영양식으로 딱이기도 하고붉은 색이라 귀신이 싫어할꺼 같은 느낌이라서 동지팥죽을 먹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옛날에는 모든 병과 사건 사고는 전부 귀신때문으로 생각했는데겨울엔 특히 몸을 다치는 사고가 터지기 쉬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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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에 산타클로스는 언제부터 등장을 하게 된건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4세기에 실존인물인 성 니콜라오스는 물건을 나눠주는 자선사업으로 유명한 인물이었고이것에서 유래한 "선물나눠주는 성 니콜라오" 축제가 12세기 무렵 프랑스수녀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그후 아메리카 이주가 시작된 17세기 무렵 "세인트 니콜라오스"의 네덜란드발음을 영어사용자들이 잘못 들으면서 산타클로스가 되었고, 어쩌다 보니까 12월 초의 성 니콜라오스 축제가 12월 말인 크리스마스에 통합당해서선물 나눠주는 성탄절이란 개념이 생겼습니다.이렇게 통합당한게 19세기로 추정되고 있죠.아마 추운 겨울에 힘든 축제 여러번 하기 힘들었던거 아닐까요?성 니콜라오스가 19세기 기준으로 1500년 전 사람이다 보니까 다양한 디자인의 그림이 존재하고 있었는데현재의 뚱뚱한 빨간옷 산타의 이미지는 코카콜라가 1931년에 마케팅에 써먹은 것이 시작으로,추기경 옷에서 빨간색을 강조,12월 추우니까 털옷,풍성한 거품을 상징하는 흰 수염, 엄청 유복해 보이는 뚱뚱한 체형 등등의 주문을 받은 화가 J.헤든 선드블론이 그린 것이고마침 비슷한 시기에 동화작가 로버트 메이가 "빨간코루돌프" 를 발표하면서 둘이 엮인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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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왕들에게는 묘호가 따로 없는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단 묘호라는게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 통일 신라시대에서 부터 때문에그 이전의 나라에는 묘호가 없거나 관련기록이 사라져서 연구가 불가능합니다다만, 시호는 확실하게 있었습니다 그런 xx왕같은게 다 시호입니다.광개토대왕 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줄임말인데 이런걸 평소에 이름쓸 수는 없겠죠?현대에도 선생님 이름을 함부로 못부르는데 고대에 왕이름을 함부로 부를 순 없으니까살아있을땐 폐하, 전하 이런식으로 불렀고, 죽어서도행적을 평가해서 칭호를 붙여준 거에요. "문무왕=문과 무과 다 잘한 왕" 이런거죠광개토대왕의 본명은 고담덕, 문무왕의 본명은 김법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유일하게 의자왕은 자기때 나라가 멸망당해서시호를 못받고 그냥 본명써서 의자왕이긴 합니다묘호와 시호의 차이는, 간단히 말해서 묘호에는 쓸수있는 한자같은 규칙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어서 무조건 x조 x종 이런 식으로 붙여야 하는데시호는 그런거 없어서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같은거도 맘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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