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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을 풀이하면 어떤 뜻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국강상=왕의 무덤이 있는 지역명광개토경= 매우 넒은 땅을 점령한평안=나라를 평안하게도 만든호=좋은태왕=대왕도 부족해서 태왕이라고 해야함이런 뜻 입니다원래 고구려에선 왕의 시호에 왕릉이 있는 장지명을 포함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好太王),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國罡上廣開土地好太王), 국강상대개토지호태성왕(國罡上大開土地好太聖王)이런 칭호도 있지만 대부분 한자만 다르고 다 비슷한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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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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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사태때 최규하 대통령은 아무것도 할수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예, 아무것도 못했습니다.복잡한 정치적 설명대신 알기쉽게 강도짓에 비유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전두환이 말 그대로 총들고 협박하고 있는데거기다 대고 "그러지마 나쁜놈아!"하면서 제압하려고 달려들어 봤자그냥 총맞고 죽는게 끝이겠죠? 그래서 뭘 하고 싶어도 못했습니다.자기도 총(=군대)가 있었다면 모를까. 당시 군인, 특히 최고위간부급들은전부 다 제2의 박정희가 되고싶은 독재꿈나무들이었습니다.아닌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누가 독재꿈나무고 누가 아닌지 최규화 입장에선 구분 할 수가 없었어요전두환부터가 군인이니까요. 강도짓 비유로 돌아가자면, 경비원 중에 한명이 강도짓을 하고 있으니내가 몰래 다른 경비원을 불러도 그게 또다른 강도일 수도 있었던 겁니다물론 고통받은 시민 입장에선 애초에 강도가 안들어오게 보안을 철저히 해야하는 책임자가대실패를 했으니 책임지고 덤벼야 했었다고 한마디 하고 싶어 지기도 하지만...전주인인 박정희가 독재질 하면서 실컨 어지렵힌 집 (=나라)를무려 그인간이 암살을 당해서 급하게 상속받은 상황이니집 보안은 커녕 정리하기도 바빴었겠죠, 그러다 강도당한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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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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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후기로 갈수록 인물 등장이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교육은 별상관 없는거 같고 세력형성이 끝나서라고 보는게 맞을겁니다.의무교육이 있는 시대도 아니고, 전면전이 있는 시대도 아니니까요.전투가 있어도 다른지역은 평소와 비슷하게 생활할 수 있었고삼국지 전이나 후나 교육은 돈많은 지배계층이 받는 거였으니그런 사람들은 전쟁중이건 말건 교육을 잘 받았습니다.세계 1차대전때 35세 미국 장군 레슬리 맥네어나나치 독일의 47세 공군원수 볼프람 리히트호펜 처럼전쟁관련 직책은 당연히 전쟁이 있어야 물갈이가 됩니다.평시에는 전투능력을 입증할 수 없으니까 그냥 연공서열로 진급을 하겠찌만전쟁 터지면 실제로 싸워서 능력을 입증할 수 있으니까요.이건 문관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요새 하나를 만들어본 경험"이나"10만 군사 보급을 완벽하게 처리한 경험"같은건 누구나 인정할 업적이니 있으면 승진이 쉽겠죠?그리고 위기를 이기는 인재가 적어지는게 아니라, 애초에 자리를 잘 잡았으면 위기가 터지면 안되는 거에요.이건 현대 회사도 마찬가지지만, 스타트업 한 직후는 경력이고 인맥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서100% 능력만 가지고 평가 받을 수 있지만, 대신 사소한 실수도 바로 멸망급 위기가 됩니다.위기 자체가 쉽게 찾아오니 위기를 이겨내는 사람도 많이 나오겠죠. 못이기면 그대로 망해서 죽는거구요이런 살벌한 경쟁이 끝나고 어느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이미 어지간한 사건에는 메뉴얼이 마련되기 마련이니자연스럽게 뭐 새로운거 도전해서 새 위기를 경험하기 보단 그냥 메뉴얼이나 따르기 마련입니다다시말해서 신인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될 사건사고가 터지기도 힘드니까, 능력 증명은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요자기 맘대로 능력을 증명하려고 사건을 만들어 낸다면내 상급자를 치워버리기 위해서 회사를 위험하게 만드는 하극상이 되는거니 승진은 커녕 처형대상이죠.잘했다면 모를까, 실패하면 있는 메뉴얼도 안지키는 바보가 되는 거자나요? 마속이 그래서 처형당한거죠덤으로 역사서인 삼국지 정사라면 모를까, 반쯤 소설인 삼국지 연희는 흥미위주로 제작되었으니전투와 음모가 날뛰는 혼란기 이후는 대충 적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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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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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트 황제가 왜 로마제국의 초대황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선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전의 로마는 공화정 이었습니다공화정 이전에 왕정이던 시절은 있었는데그건 시골 촌구석의 왕이지 황제가 아닐 뿐더러,엄청 쓰레기 같은 왕이 나라 망하게 할 뻔 한적이 너무 많아서그냥 왕 없이 여럿이서 의논하면서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서 공화정을 했습니다.그후 나라가 너무 커지면서 강력한 통치자에 대한 필요성이 생겨서"종신독재관"이란 제도가 나타나긴 했지만.어디까지나 의회가 인정하는 능력자가 잠깐 독재한다는 개념이지 황제가 아니었어요.그래서 독재관이 죽거나 실수하면 바로 의회가 권력을 몰수했죠.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독재관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대단한 군력과 권력을 가져서반쯤 황제 취급을 받았지만, 너무 일찍 암살당해서 황제가 되진 못했습니다애초에 황제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기도 하구요그 후에 율리우스의 양자인 아우구스투스가 경쟁자를 모두 물리치고, 옆나라 이집트도 박살내고정말 라이벌이 하나도 없는 로마겸 지중해 제일의 존재가 되면서"왕처럼 혈연으로 물려받는, 평범한 왕보다 엄청 대단한 무언가"라는 개념이 처음 생겨나게 되었고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아우구스투스를 로마 최초의 황제 로 취급하는 겁니다아우구스투스는 속마음은 어쟀던 자기는 그저 제1의 시민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독재자가 아닌척 행동했어요, 후대사람들이 저거 그냥 황제아님? 하고 나중에 황제로 올려치기 한거죠그리고 이건 사족이지만 시저는 카이사르를 영어식으로 읽은것입니다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풀네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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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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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에 소속된 노비, 기생들을 첩으로 들일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관노는 현대인이 생각하는 공무원같은 느낌이 아니라그 관에 소속된 "비품"같은 존재였습니다. 말 그대로 물건취급이죠그러니 돈많은 양반이 남들이 욕하는거 감수하고 그 노비를 산다면얼마든지 첩이 될 수 있었습니다.물론 "할아버지가 역적" 처럼 범죄자 친척인걸 누구나 아는 상황이라면 욕정도로 멈추는게 아니라 진짜 사형당할 수도 있어서 그러지 않겠지만"아버지의 할아버지의 고조 할아버지가 역적" 같은 수준이라면 별문제 없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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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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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에서는 다른 국가로 넘어가서 사는게 자유로웠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 반대 입니다국경은 커녕 자기네 마을에서 나가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에이민은 커녕 여행도 귀족들만 다닐 수 있었습니다.우선 그럴듯한 마을이면 모두 경비병이 있어서 출입 통제를 받았구요당연히 신분증같은건 없기 때문에 인맥이 있거나, 최소한 돈이라도 많아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또한 길은 100% 산길 흙길인데다가 경찰 비슷한 것도 없으니까언제 어디서 산적이 튀어 나올지 알수가 없으니 돌아다니려면 사람과 무기를 많이 준비해야 했고결정적으로, 대부분이 농노라는 노예계층 이었기 때문에옆집으로 이사하는 것조차 자기 맘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무조건 윗사람 허락을 받아야 했죠추가로 중세에는 중상주의라는게 유행했어요간단히 말하자면 "자기네는 물건 하나도 안사면서 남들은 내 물건 전부 사면 엄청 이득이다!"라는 사상이죠.물론 기본적 경제교육을 받는 현대인이 보면 이상한 논리지만 당시사람들은 이게 그럴듯 하다고 생각했고당시 귀족들은 "내물건"에 자기 영지의 사람들을 포함해서 생각했기 때문에옆 영지로 이사가는 것도 귀족에게 바칠 엄청난 돈과 화풀이를 막아줄 뒷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측량같은 지형을 측정하는 기술또한 없었기 때문에영지 사이의 경계선에 살거나 아직 개척되지 않은 땅에 숨어사는 화전민 같은 사람들은소속된 영지가 쉽게 바뀌기도 했습니다만, 이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배자가 바뀌는거라서질문자 분이 상상하는 자유로운 분위기랑은 완전 다를 겁니다.자유민 이라고 맘대로 돌아다닐수 있는 사람도 없진 않았지만이런 자유민은 돈많은 상인이나 차별받는 유대인 같은 경우에만 해당됩니다헌법같은 것도 없어서 영지 주인 맘대로 법이 정해지기 때문에욕심많은 영주 한테 들키면 슬쩍 노예로 처리당할 수도 있어서대부분 상인은 돈이 많아지면 한영지에 정착하기 마련이었고유대인이나 집시는 자기들이 어디 정착 하고싶어도 못해서 떠돌아 다니는 거라서국적을 맘대로 바꾸는게 아니라 국적 가지고 싶어도 못가지는 상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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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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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트리가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크리스마스 트리에는 관련 전설이 있는데8세기 독일 지방에서 북유럽신앙으로 나무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야만적 풍습이 남아있을때영국 선교사 윈프리드가 아직 제물이 없는 전나무를 가리키면서 "이걸 집에 가져가 예수의 탄생이나 축복해라"라고 설교했다는 전설입니다.이 전설이 얼마나 사실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고대 북유럽 지방에서 겨울에도 푸릇한 전나무에 과일이나 생선등의 제물을 바치던풍습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며이것이 기독교 전파 후에 융합되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었다고 합니다,즉, 예수랑은 별 상관 없습니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같은 기독교 풍습이 사실 이교문화 출신이란건 유명한 이야기죠. 상대방의 문화를 억지로 뿌리 뽑는 것 보다는 좋은게 좋은거라고그 지역 특징을 살려서 선교하는게 더 편하고 잘통하니까요.한국 기도회에서 가끔 "수능 합격하게 하시옵고 "하는 식으로 소원을 비는 것 또한굿판 벌이던 민속신앙이 기독교랑 합쳐진 거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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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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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왜 현재 발전하지 못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연구 매우 잘되고 있고 매년 논문도 잘 나오고 있습니다강인공지능 알고리즘이던 SGLT-2 억제제던 윙렛을 장비한 천음속익이던 뭐던어느 분야의 최신 기술은 일반인에겐 와닿지 못하는게 보통이에요당정 신기술이 튀어나와서 평가가 뒤집혀질 수도 있고, 어차피 관련도 없는 사람은볼 기회 조차 거의 없기 때문에 쉽게 설명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죠챗GPT를 민간인도 쓸수 있게 되고 나서 AI관련 서적이 엄청 많아 진 것처럼그 기술을 실제로 쓸수 있어야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기 마련입니다실제로 만져볼수 있는 물건도 이런 상황인데 눈에도 안보이는걸 다뤄야 하는심리학이나 종교학 같은건 얼마나 설명하기 힘들겠습니까?이런 정신적인 분야를 이해하기 위해선 배경지식을 쌓아야 하니그 시작점인 먼 옛날 이야기부터 공부해야 하고그렇기 때문에 의무교육 과정에선 옛날 이야기 밖에 못하는 겁니다.수학을 배우기 위해선 1+1부터 알아야 하는 것과 같죠그런데 심지어, 현대 학문에선 과거 철학의 일부던 많은 분야가윤리학, 정치학, 사회삭, 심리학, 언어학,미학 등등으로스스로 독립했기 때문에 순수하게 철학 그 자체라고 할수 있는 영역이 너무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어서 일반인에겐 잘 체감하기 힘들고철학이 저 모든것을 뜻하는 단어였던 고대의 철학이 훨씬 더 유명한거죠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도근대 쯤에 나왔으면 철학서로 분류 되었겠지만현대에는 윤리학이나 정치학 관련서로 분류되죠. 이런 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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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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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개는 어디지역에서 유래된 전통개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풍산개는 함경남도 풍산군(豊山郡)의 개이기 때문에 풍산개 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해당 지역이 지금은 북한땅이기 때문에 현재 남한에서는 잘 연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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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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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성탄절 같은뜻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크리스마스=그리스도Christus마스massa=그리스도(=예수님)+마스(=모임)=그리스도(의 탄생을)기념하기 위해 모이는 날성탄절=성스런 자의 탄생을 기념하는 절기=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성탄절은 크리스마스와 같은 뜻입니다. 번역과정에서 만들어진 단어죠석가탄신일 비슷하게기독탄신일 이라고 번역하는 시도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성탄절 쪽이더 간편해서 더 많이 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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