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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의 기원과 특징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힌두교는 신두라는 이름에서 왔는데, 이게 인더스 강의 산스크리스트인의 페르시아 발음입니다. 결국 인디아같이 인도를 말하는 것으로 힌두교는 인도의 종교를 뜻합니다. 그래서 사전적으로는 인도에서 발생한 모든 종교 불교, 바라문교 자이나교를 다 포함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베다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와 자이나교는 뺀 것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다는 고대 인도의 종교지식 및 규정이 적혀 있는 문헌입니다.힌두교의 가장 큰 특징은 타 종교에 대해 관대하다는 것입니다. 중앙집권적이지 않고 위계가 없고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신앙형태가 섞인 것이라 볼수 있습니다. 물신, 정령도 숭배하고 주술도 있고 제식도 있고 등등 다양합니다. 그래서 인도의 문화 사회라고도볼 수 있습니다.감사합니다.
학문 /
철학
2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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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민주정은 어떻게 운영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테네 민주주의는 세계 최초의 민주정으로 간주됩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로, 입법과 행정에 관한 결정이 유권자의 투표로 결정되었습니다. 모든 주민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지 않았고 유권자는 성인 남성으로 제한되어 미성년자, 여성, 노예, 외국인은 투표할 수 없었습니다. 이건 지금하고 다른 점입니다.그래도 오늘날 민주주의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시민에게 뽑 500명으로 구성된 선출직 협의회를 만들었는데, 이게 지금 의회하고 비슷합니다.감사합니다.
학문 /
역사
2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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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이나 설렁탕은 언제부터 나온 음식인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때 부터 먹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곰탕은 조선시대 음식책에도 등장할 정도로 왕실의 음식으로, 영양가가 높고 구수한 맛으로 임금님 수라상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설렁탕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설은 조선시대 경칩(丑)이 지난 해(亥) 초하루에 동대문 밖 서농단에서 임금과 신하들이 백성들과 함께 모였던 서농제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학회에서는 곰탕과 설렁탕이 몽골의 음식이라는 설을 정설로 보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학문 /
역사
2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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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스건의 유래를 알고싶어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그리스와 로마 신화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테티스라는 미모의 바다의 여신과 국왕 펠레우스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아킬레우스입니다. 테티스는 본인의 아들을 불사신으로 만들고 싶어 저승의 스틱스 강에 온몸을 담궜는데, 이때 테티스가 잡았던 부분 발뒤꿈치는 못 담궜습니다. 그래서 이게 아킬레우스의 유일한 약점이 됐습니다.그리고 나중에 트로이와의 전쟁에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하고의 싸움에서 이기고 시체를 마차에 끌고 다닌 뒤 돌려 줬습니다. 알레우스가 헥토르 장례식에 갔다 트로이공주 폴릭세네를 보고 반했는데 폴릭세네는 오빠 복수 때문에 결혼한다고 거짓으로 약속합니다. 그리고 신전에 가서 사랑을 맹세해달라고 시키고 또 다른 오빠인 파리스가 아킬레우스의 발 뒤꿈치에 화살을 쏘고 아킬레우스는 죽습니다.이 신화에서 유일한 약점이라는 느낌으로 유래됐습니다.감사합니다.
학문 /
역사
2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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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류가 아프리카에서부터 우리나라로 오게 된 경로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호모사피엔스가 해수면이 낮아진 상태에서 홍해를 걸어서 통과할 수 있었는데 이 때 기후가 변화하면서 먹을것을 더 찾아서 이동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 자체의 탐험 욕구도 있었구요. 대략 110,00년전에 1차 이동이 있었고, 70,000년전에 2차 이동이 있었던 걸로 봅니다. 이때 북부아프리카를 인류가 최초로 떠나 아라비아 사막쪽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이런식으로 조금씩 이동이 되어 우리나라에 온게 30,000년전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때는 일본도 걸어서 갈수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를 거쳐서 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감사합니다.
학문 /
역사
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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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인물들은 모두 허구의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전부다 허구는 아닙니다. 삼국지는 정사가 있고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통속연의 가 있는데 이 연의 때문에 더 그렇게 생각되는게 많습니다.유비나 관우는 실존 인물이지만 유비의 귀가 엄청 크고 길고 관우의 힘이 너무 세다던가 병력 수가 너무 많다던가 하는거는 과장된 얘기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초선은 정사에는 없는 인물로 재미를 위해 소설에서 추가했다고 볼수 있습니다.감사합니다.
학문 /
역사
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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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이차돈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에 대한 질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무래도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유는 유명한 역사서 중 하나인 '삼국유사'에 내용이 있어서 일것 같습니다. 신화이긴 하지만 기록으로 딱 남겨져 있으니가 잘 전해 진거 같습니다. 또 신화적 요소가 있어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구요.이차돈이 죽을 때 하얀피가 나오고 꽃비가 내리고 한게 불교위주의 표현이 가미되어 그런거 같습니다. 연꽃은 불교의 상징인데 줄기를 꺾으면 힌 수액이 나오는 것과 관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삼국유사에서도 법흥왕이 순교를 자청해 이차돈이 절을 짓다가 국령을 어겨서 처형되는데 여기에 배경은 앞서 반대한 신하들이라는 말도 나오기 때문에 불교의 억울함을 신비하게 표현한게 아닐까 생각됩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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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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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가 유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상징적으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르네상스 당시의 여성을 잘 표현했고, 나폴레옹이 좋아했고, 박물관에서 도난도 당하고 해서 유명해졌습니다.그림 자체로만 보자면, 모나리자 여성의 감정이 애매해서 해석을 다양하게 만들었으며, 입체감과 공감감을 잘 표현하고 오일파스텔로 섬세한 색감을 잘 나타냈다고도 얘기됩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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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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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역사는 문헌으로 기록된 역사인가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실 정사로 기록된 문서는 없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삼국유사에 단군신화 내용에 따르면 기원전 2333년에 단군에 의해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있는데 설화라서 신뢰성이 약합니다.그리고 고대 중국 기록에는 중국 상나라 기자라는 사람이 고조선으로 망명해서 왕이 됐다고 하는데 이거는 중국위주의 기록이라 신빙성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런걸 봣을때는 고조선이 있지 않았나 라고 추측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중심지가 지금의 북한이기 때문에 옛날 자료를 발굴하는데 더 한계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감사합니다.
학문 /
역사
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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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無爲)의 지혜'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무는 없을 무 위는 할 위 인데 인위적이다 할때 쓰는 한자입니다. 그래서 결국 무위는 인위적인게 없다는 말이고, 흔히 무위자연할때 많이 씁니다.그러니 인위적인거 없이 자연스럽게 자연스러운 일에 어떤 걸 가미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혜를 말하는데 되게 철학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자연의 섭리대로 흘러가는 걸 인정하고 존중하고 약간 득도한 그런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어떤일이 잘 안풀린다고 해서 아둥바둥하지말고 자연스럽게 해결되도록 놔두거나 기다릴 수 있는 지혜라고 보면 될거 같습니다. 그리고 누가 강하게 의견을 피력해서 주장하고 서로 싸우는것 보다 상대방의 입장도 헤아릴 수 있는 것도 무위의 지혜를 갖춘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또 단기적으로는 힘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좋게 될수 있는 걸 알고 그걸 기다리면서 받아들이는 거도 무위의 지혜 중 하나일 것입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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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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