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전쟁나면 칼을 들고 전쟁에 실제로 참가했었나요? 아니면 궁궐에만 있었나요?
안녕하세요.고대시대에는 전쟁 시 왕이 직접 나가서 전투하였던 친정의 기록이 꽤 있습니다. 실제로 백제의 성왕은 신라와의 전투에서 사망하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이후 고려-조선 시대에는 왕이 직접 친정을 가는 것 보다는 왕의 권한을 대리하여 신하가 전쟁에 참여하는것이 보통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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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김씨 성이 많은 이유가 역사적으로 신라와 연관이 되어있나요?
안녕하세요.대한민국에 김씨성이 많은 이유는 말씀해주신 것 처럼 신라와의 관계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신라 왕족은 내물왕 이후 거의 모든 왕들이 김씨였을 정도로 대부분이 김씨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외에는 박씨와 석씨가 있습니다.)이후 고려시대에 왕건이 신라를 흡수하면서 김씨 왕족의 지위를 인정해주었고, 자연스럽게 지방 호족화가 되면서 더 넓게 퍼질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가장 많이 알려진 경주 김씨, 광산 김씨, 안동 김씨 등 수많은 본관으로 퍼져갔다고 보시면 됩니다.이후 조선시대에도 김씨성의 양반들과 과거 합격자가 많아지면서 당시에 이름이 있는 명문가 중 김씨성을 가진 사람이 많았고, 조선 후기 성씨가 보편화 되면서 명문가였던 김씨성을 일반인들이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김씨가 가장 많은 성씨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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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이 서유럽열강들이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 전쟁?
안녕하세요.말씀해주신 부분도 1차 세계대전의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민족주의의 충돌이 세계대전의 의의가 되었다고 보긴 어려우며, 세계의 패권을 두고 서구의 열강들끼리 크고 작은 분쟁을 일으키다 사라예보 사건으로 그 도화선이 되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대표적으로 직접 언급해주신 독일의 3B 정책과 영국의 3C정책은 연합국과 동맹국의 대표격끼리의 충돌로 볼 수 있습니다.
2.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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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현장답사 갈만한 곳 추천해주세요.
안녕하세요.이야기 해주신 영화들을 보았을 때, 독립운동사와 관련된 유적지나 기념관을 이야기 해주신 것 같습니다.주로 경기도보다는 서울이나 충청도에 유명한 곳들이 많은데, 아는 곳들 위주로 답변드립니다.서울서대문 형무소 (직접 당시에 고통받았던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된 환경을 체험할 수 있어 추천드립니다.)경기도양평 유관순 열사 생가 및 만세 운동 유적지양평 여운형 기념관화성 3.1운동길충청도천안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에 관련된건 여기에 다 있어서 제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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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19대임금은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나요?
안녕하세요.신라시대 왕의 칭호는 계속 변화하여 왔습니다.1) 거서간 - 대족장이라는 의미입니다.2) 차차웅 - 족장+제사장이라는 의미로 종교적인 의미가 추가되었습니다.3) 이사금 - 연장자 / 지혜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가 많으면 오래 산 사람으로 생각한 인식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습니다.4) 마립간 - 큰 임금, 왕중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원래 마립간은 당시 방언으로 말뚝을 뜻하는데, 말뚝과 같이 가장 위는 왕, 아래 신하가 바친다는 뜻으로 왕을 마립간이라 불렀다고 합니다.5) 왕 - 현재에 쓰이는 왕의 칭호입니다. 지증왕때부터 사용하였습니다.신라의 영토와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왕을 부르는 칭호도 성장하였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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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 굉장히 많은 나라가 있었는데 기술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흔히 우리나라 역사를 이야기 할 때 고조선 - 부여/고구려 연맹국가 - 삼국시대 - 통일신라 - 고려 - 조선으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나라들이 있었고, 실제로 한국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신다면 모든 나라들에 대해서 학습하실 수 있습니다.주로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위주로 역사를 기술하는 이유는 가장 중심이 되는 나라들이기도 하면서 한국사에 중심이 되는 나라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중앙집권국가가 되지 못하였거나, 빠르게 사라진 경우들이 많아서 잘 알려지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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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판서라는 직책은 얼마나 높은 직책이었나요? 상당히 궁금하네요
안녕하세요.병조판서는 당시에 모든 군사를 담당하는 최고 직책 중 하나였습니다. 군대를 다스릴 수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 따지면 국방부장관쯤의 직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전쟁시나 국가 재난시에 통신이었던 파발도 담당했으니,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직책입니다.조선시대에 관직에 오르는건 양반들만이 가능했기 때문에, 일반 평민들은 오를 수 없는 직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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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수와 당의 침략을 막아내는 공부 단원이 있는데 이해가 안되요
안녕하세요.수나라는 중국의 선비족 계통이 세운 왕조로, 그때 여러 나라노 분열되어있던 중국을 통일하고 중국대륙을 지배하게 됩니다.중국대륙과는 다르게 한반도(우리나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 할 무렵, 신라의 진흥황이 백제로부터 한강을 빼앗고 세력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한반도에서 한강을 점령했다는건 중국과 바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신라가 주도권을 잡았다고 보면 됩니다.서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따로 봐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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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확성기를 중지하는게 평화로 가는 길인지?
안녕하세요.대북확성기 방송 중지는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방향성은 평화를 위한 방향성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대북방송자체가 북한 체제에 상당한 위협이 되는것이 사실이고, 이를 가지고서 북한측에서 상당히 날카로운 태도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방송을 중지함으로써 우선 우리쪽에서 한발 다가갔고, 이제 북한의 태도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북한이 이를 이용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아무래도 안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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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의 당시 영향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고려시대에 일어난 운동으로, 조선시대에 학자들은 이를 평가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다만 고려의 역사를 집필한 <고려사>에는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을 "난"으로 표현하여 군사적인 반란으로 표시하였습니다.특히 사대주의와 보수주의를 수호하는 개경파 김부식에 의하여 진압되었다고 기록되어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았다는게 정설입니다. <고려사> 자체가 조선시대에 공식적인 고려 역사서이기 때문에, 조선 사대부들은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반역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이후 일제 강점기의 신채호가 묘청을 긍정적으로 재평가 하였기는 했지만, 이는 근대 사학자 중 한명이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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